
한국 경마에서 대상경주가 펼쳐지는 날이 축제라면 ‘그랑프리’가 펼쳐지는 날은 축제 중의 축제가 되겠다. 한 해의 경마를 마감하는 의미가 있겠고, 더 큰 의미는 2025년 가장 강한 경주마가 탄생하는 날이라는 것이다. 올해 마지막 대상경주이기도 하는 서울, 부산경마장 오픈 대상경주인데 제43회 ‘그랑프리’에는 일본 경주마가 한 마리가 도전해 국제경주가 되었다. 일본 고치경마장의 최강자 ‘유메노호노오’가 이미 서울경마장 주로에서 새벽 훈련을 하고 있다. 경마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알려진 익숙한 경주마다. 지난 4월 20일 펼쳐졌던 YTN배 대상경주에서 강력하게 선두력을 구사해 끝까지 선두권에서 물러서지 않고 3착을 거뒀으니 말이다.
한국 경마의 ‘그랑프리’는 43년 전인 1982년 창설돼 제1회를 펼쳤다. 첫 회는 최태환 기수가 고삐를 잡았던 전설의 명마 ‘연안부두’가 우승을 챙겼다. 2회는 김성현 기수와 호흡을 맞춘 ‘밀림호’가, 제3회는 ‘자격루’를 몰고 백원기 기수가 우승을 거뒀다. 3회까지의 기록은 한국 경마의 전산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아 올드팬들의 기억 속에만 있다. 1985년 제4회부터 한국 경마는 경마기록을 전산화하면서 남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경주마 생애 한해 최강마가 될 수 있는 ‘그랑프리’에 단 한 번의 우승을 일궈내기 위해 망아지 때부터 온 힘을 기울여 달려보지만 어느 것을 끌어와도 비유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태생의 우열과 사양 훈련 환경의 우열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질 수 있고 어떤 기수와의 만나는가 도 크게 좌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랑프리’에 두 해에 걸쳐 연패의 위업을 달성하는 경주마도 탄생을 한다. 시행한 지 43년이 지나면서 그 어려운 ‘그랑프리’ 연패의 금자탑을 쌓은 명마는 제4, 5회 지용철, 김귀배 기수가 고삐를 잡았던 전설의 명마 ‘포경선’이었다.
그 영상은 지금도 볼 수가 있다. 다음으로 ‘그랑프리’에서 연패를 한 경주마는 과천경마장으로 이사 온 1991, 2년 제9회와 제10회는 김재섭, 김창옥 기수가 몰았던 암말 ‘가속도’였다. 세 번째는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2008,9년 ‘동반의강자’가 최범현 기수와 함께 연패를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세 번째 연패 기록을 쓴 지 12년 후 코로나19 곤혹의 시대를 벗어났던 2022, 23년 40, 41회 ‘그랑프리’를 석권했던 ‘위너스맨’이 네 번째 연패를 이루며 연패의 기록을 마감했다. 43년간의 한국 경마 ‘그랑프리’ 업적이라 하겠다.
이번 일요일 서울경마장 제8경주에서 제43회 그랑프리가 펼쳐진다. 한국 경마 경주 거리 중 가장 긴 2300m거리에서 2025년 가장 강한 경주마가 누굴까 ? 치열하게 겨룬다. 42회까지는 순수한 한국 경주마들의 그레이드1경주로 펼쳐졌는데 이번 대회에는 느닷없이 일본 지방경마 고치경마장 소속 최강마인 16유메노호노오(일 수 5세 26전/20/3/1 요시하라)가 도전해 지난해 ‘그랑프리’를 제패했던 12글로벌히트(국 수 5세 21전/12/4/1 서승운)의 연패 작전에 걸림돌이 되려는 지. 물론 최근 12글로벌히트가 2연전에서 8석세스백파(국 수 4세 19전/7/1/5 진겸)와 9스피드영(국 수 5세 27전/7/5/7 정도윤)에게 무릎을 꿇었던 터라 팬들의 신뢰가 전만은 못하다. 더 더구나 그간 찰떡궁합으로 위업을 일궈냈던 김혜선 기수와 결별을 하고 도전하는 만큼 연패에 낙관하기가 표면적으로는 어려워진 모습으로 비추는 것은 사실이다.
과연 그럴까? 이것이 제43회 그랑프리 관전과 베팅의 키포인트가 되겠다. 과연 12글로벌히트는 한국 경마 그랑프리 연패의 다섯 번째 주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비관하기에는 아직은 이르다고 본다. 추호의 의심도 없이 우승을 기대하면서 지난 2연전에 12글로벌히트에게 믿음과 베팅을 했던 팬들의 실망은 실상 컸었다.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명마들이 그간 무너져갈 때의 모습을 기억해본다면 경주마의 일시적인 컨디션 저하와 경주에 운까지 따르지 않은 준우승과 4착이라면 명마가 무너지는 전조로 판단하기에는 이르지 않을까.
한국 경마 최고의 경주마들이 모여 축제 중 축제를 펼치는데 상금에 침을 흘리며 일본에서 날아온 지방 경마 특급 기수 요시하라(가나자와 경마장 리딩자키)와 고치경마장 최고마 16유메노호노오가 합작해 보여줄 도전도 즐기기에는 큰 구경거리가 되겠다. 다만 한국 경마의 자존심이 ‘코리아컵’과 ‘코리아스프린트’에서 짓뭉개지듯 무너지는 것은 싫다. 보기 싫다. 그러니 부디 12글로벌히트는 부산경마장 최고의 기수 서승운과 함께 건재함을 알리며 연패에 도전해주길 바라며 대등한 적수 부산경마장의 9스피드영과 8석세스백파의 강건함도 아울러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위 네 마리가 초반부터 경주를 주도하면서 선전을 이어준다면 그레이드1급 대상경주를 팬들이 마음껏 관전할 수 있겠다. 그러면 서울에서 출전하는 경주마들은 게이트 하나를 차지한 것으로 만족해야 할까? 경주 경험을 얻자고 출전한 3세 마중 5원평스톰(미 수 3세 10전/7/0/0 마이아)과 거구에 막판 추입력이 일품인 6강풍마(국 수 5세 23전/9/5/3 조재로)는 쉽게 넘길 수 없는 복병으로 주목해야겠다. 앞장에 나서서 빼어난 순발력을 발휘해 경주를 편하게 주도할 세 살 배기 5원평스톰이 그대로 빼앵 돌아버리고 놓치면 파란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겠고, 선두권에서 유명세들간 무리한 견제로 경주가 느슨하게 풀어지면 총알같이 막판에 날아들 6강풍마의 역습도 추리에서 빼지 말아야겠다.
2025년 제43회 그랑프리에서 제일 바라는 첫째는 12글로벌히트가 다섯 번째 연패를 이루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부산 적수들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6강풍마의 멋진 역습이 짜릿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모든 경주마들이 건강하게 경주에 임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