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ogf49gjkf0d
이른 새벽.
저마다의 재킹을 달고 경주마들이 하나둘씩 주로에 모습을 드러내면,
조교관찰자들은 일람표에다가 훈련량과 패턴, 또는 그 내용에 대한 평을 열심히 기록하게 됩니다.
높은 경매가의 신예 망아지부터 황홀한 주폭을 자랑하는 1군마...
상승세의 스프린터, 최근 들어 꾸준히 늘고있는 복병들까지.. 정신없이 체크에 몰두하지요.
그 틈바구니 속에는 이른 바 <싸인펜값도 안나오는 녀석>들이 또 있습니다.
출전과 동시에 경마팬들로부터 외면 받을 운명..
언제나처럼 쉽게 가위표가 그어질 마필들..
오늘 새벽, 묵묵히 훈련중이던 한 부진마 한마리를 바라보다가
문득 예전 제 홈페이지에 있던 글이 생각나서 다시 올려봤습니다.
************************************************************
변마의 독백... (배경음악, 볼륨 업...) * 배경음악 : Triumvirat - For you
내 이름은 『돈벼락』,
통산전적 68전.. 2착만 세번.. 그나마 그 중 하나는
수년 전 단거리 경주 때 도주후 버티기 작전으로 겨우 따낸 것.
혈통?
나의 부마는...
뉴질랜드 변두리 경마장에서 바닥을 쓸다 사라진 부진마였다.
나의 주행습성은 추입..
각종 예상지의 경주 평가란에 "후미탐색"이라 적혀있다.
말이 좋아 후미탐색이지,
실상은 해찰하며 동료들의 꽁무니를 좇았을 뿐이다.
데뷔 시절, 나의 각질은 도주였다.
땅! 소리와 함께 단독선행으로.. 질풍노도처럼 튀어나가지만,
직선주로에 접어들면 이내 쉽게 무너지고 마는...
나의 사랑도 그러했다..
그 후 나는 거세마가 되었다.
요즘 나는 질주가 싫다. 일종의 직업병이랄까.
이 돌고 도는 말의 원형트랙 속에서,
"가지 않은 길"을 꿈꾸는 자는 불행하다.
세인들은 그를 똥말이라 부른다.
나는 주행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라고는 감히 말하지 못한다.
내가 말(馬)이기를 멈추는 순간,
나는 불용처리 되어 단돈 몇푼에 육용으로 팔려나갈 것이다.
그런 나에게 꾸준히 돈을 거는 한 사내를 알고 있다.
사내는 3년 전부터 나를 추적해 왔다.
그가 나에게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단 하나,
오직 나같은 똥말만이 그에게 999배당을 안겨줄 수 있으므로...
사내는 마권을 산 후, 전광판을 바라보며 깊게 담배를 빤다.
밀린 세금이, 마권처럼 구겨진 청춘이,
떠나간 애인이.... 빠르게 배당판을 스쳐간다.
나를 사랑한 자들은 모두 그랬다.
어디 한군데는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채로 표표히 떠나갔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그는 결코 이곳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걸..
세속의 온갖 말들의 후미에서 해찰하는,
불용처리 직전의 부진한 말들만을 사랑하는 게 그의 업이기에.
그는 고배당만을 노리다 생을 마감할 것이다.
경주는 새로이 시작되고, 욕망은 지연된다.
나의 질주는 반복되고 누군가는 또다시 나를 기다린다.
결승선 전방 어디쯤 후미그룹을 형성하다, 벼락처럼 치고 나오는 짜릿한 나의 모습을...
나의 왕인 고객이시여, 아직은 칼을 거두소서.
내 말(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답니다.
나는 여전히 후미탐색 중이니까요.
기다림을 멈추지 마세요.
언젠가는 대박을 안겨드릴 거예요.
그럼요, 멋지게 인생을 역전시켜 드리겠어요....
- 유하의 시 중에서...각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