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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마는 어디에서 왔을까



세월이 쏜살같다, 는 말이 실감 난다. 올해도 상반기가 이제 한 달 남긴 채 다 갔다. 5월의 마감이 이번 주다. 지난달 46일 한국경마 크라운 경주첫 관문인 KRA마일 대상경주가 부산경마장에서 펼쳐지며 경남신문배에서 우승을 거둔 오아시스블루가 연승을 챙기며 두각을 보였다. 한 달 뒤인 지난 511일 모든 팬의 큰 기대를 받으며 두 번째 관문인 28회 코리안더비에 출전,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다시 우승을 여유롭게 챙겼다. 올해 2관마로 등극한 오아시스블루가 과연 삼관마로 우뚝 서면서 오랜만에 한국경마의 앞날에 청신호를 보낼 것인가 615일 펼쳐질 25회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대상경주를 기다린다.

 

경마란 일정한 거리를 정하여 놓고 기수가 말을 몰고 빨리 달리게 하여 승패를 결정하는 경기다. 이에 관객들은 우승마를 선택해 돈을 걸고 응원을 보내 적중하면 걸은 돈과 같거나 더 많은 배당금을 받게 된다. 재미를 더하려고 오랜 세월 경마는 변화를 도모했다. 베팅의 방법을 다양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경주 거리를 여러 가지로 만들었고, 심지어 평지 경주와 장애물 경주도 만들었고, 주로도 잔디와 모래로 나누어 놓았다. 물론 경주마의 등급을 세분화하여 같은 등급끼리 경주를 달리게 해 우승마 맞추는 것을 어렵게 했다. 같은 등급일지라도 능력에 미세한 차이는 핸디캡을 주어 같은 조건을 부여해 공정한 경주를 추구해왔다. 이 준비된 경주 즐기려고 전 세계 경마 개최국들은 곳곳에서 노력을 기울여 오늘날의 경마가 탄생되었다.


세계경마사를 잠깐 짚어보자면 근대경마는 1776년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돈카스터(Doncaster)‘목장의 경영자이며 군인이었던 세인트 레저(St. Leger)‘대령이 세 살짜리 수말끼리 펼친 경주가 경마의 효시로 알려졌고, 1780더어비 (Derby)‘경이 네 살짜리 말들의 경주를 그의 결혼 1주년이 되는 54일 목요일에 성대하게 개최했는데 근대경마의 효시로 기록하고 있다. 세계경마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이웃 유럽국가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상황을 이뤘고, 미국까지 건너가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도 시행되면서 세계인에게 레져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동양에서는 1865년에 일본에서 처음 시작했다. 물론 처음에는 서양인이 경영하다가 일본 군부에 넘겨졌다. 나중에야 민간인이 참여해 1906년경부터 일본경마에 불이 붙어 전성기에 일본 국민의 3/1이 경마를 즐겼고, 사양길로 접어들었지만 아직도 일본은 경마 천국으로 불린다.

 

한국경마는 어디에서  왔을까? 일본 강점기였던 1922년에 조선 경마구락부가 결성돼 서울 한강 백사장에서 경주가 펼쳐진 것이 첫 경마였고, 그것이 한국 경마의 첫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이듬해인 1923년 서울 신설동에 경성경마장이 세워지면서 매해 정기적이 아닌 수시로 경마가 개최되었다. 얼마 후 신설동 경성경마장‘ 외에도 지방인 부산, 대구, 대전, 군산, 평양, 원산, 청진, 웅기 등지에도 경마장이 설립돼 한국에도 일제 치하에서 경마가 한때 대성황을 이루었었다. 1937년에는 조선 경마령이 제정돼 8개 처에서 경마를 개최하였고, 1942년에는 조선마사회의 전신인 조선경마 협회를 해체하고 한국경마로 변신했다.

 

한국경마는 일본이 한국을 식민화 한 시절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식민지인 한국에서도 보려고 보급한 꼴이 된 셈이다. 한국민의 자의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시절 만들어졌으니 근본은 순수하게 한국이 만들거나 유럽에서 직접 들여온 것은 아니겠다. 그렇게 출발했다. 다만 세월이 지나면서 한국마사회가 국산마 생산장려책을 만들고, 개인 목장에 종부료 없이 씨수말을 교배를 널리 시행하면서 오늘의 한국경마로 발전하였다. 2000년대 초반에는 전 세계 경마 개최국이 부러워할 정도로 한 경주 매출이 100억 원을 넘긴 적도 있었다. 당시 한국경마는 절정기를 맞이했으나 꾸준히 발전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안이하게 대처한 것이 한국경마가 서서히 알게 모르게 하향 곡선을 긋게 된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겠다.

 

잘 굴러가던 온라인 경마의 폐지는 한국경마를 쇠락시키는 데 가장 아픈 부분으로 지적할 수 있겠다. 한국경마의 미래인 인터넷 경마를 법적 준비를 미리 마련하지 못해서 고사시킨 것이다. 이어진 코로나19 펜데믹 시대를 맞으면서 한국경마에게 더 큰 천둥, 벼락으로 되돌려졌다. 한국마사회의 오만과 불손한 팬들에 대한 무성의한 운영이 더욱 부채질하면서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돋아난 불법 경마들이 한국경마의 매출을 도둑질 해갔고, 이를 막아 설 아무 대책도 없이 경마만 돌려 온 한국경마는 쇠락의 길 위에서 무방비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한국경마가 급격히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는데도 여전히 그들은 고객들에게 입장료를 받으면서 주차장에는 꼬박꼬박 주차비까지 징수해 찾아오던 팬들의 발걸음을 띄엄띄엄하게 스스로 만들었다. 대상경주 날이면 경마장을 찾아오는 팬들에게 각종 대형 상품을 걸고 이벤트를 펼치며 팬들의 환호를 이끌던 그 시절을 팬들이 그리워하면서 떠나갔으나 그들은 모른 척 하며 떠나가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 만 보았다.

 

경마는 프로야구나, 축구처럼 팬들에게 많은 재미와 감동을 줄수록 사랑을 크게 받을 수 있다. 고도로 발달 된 사회의 격무와 고단함에 젖은 사람들의 지친 심신과 두뇌를 쉴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줄 수 있을 때 너도 나도 다시 찾을 텐 데 누구도 그 방법을 찾으려 들지 않는다. 그들은 곧 그들의 직장이 사라질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보지 못한다. 한국경마가 우리에게 도달한 지 100년이 지났다. 이제 한국경마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 새로운 발상을 기반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2년 차로 접어든 더비온을 가꾸는데 목숨을 걸기 바란다.

 

 

 


2025.05.28 14027:0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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