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가 할 일이 뭐있어? 조교사 정하고 말 사는 일 밖에 더 있어?
15년도 지난 일입니다. 처음 마주되고 협회 총회에서 만난 원년마주님과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그땐 그분이 시크한 성격인 줄 몰랐습니다.
어떤 조교사로 정해야 합니까?
조교사 모두 그놈이 그놈이야! 거짓말 안하고 엉뚱한 짓 안하는 놈 정하면 돼!
해가 지날수록 공감하는 말입니다. 사실 마주는 조교사 정하는 거 말고는 할 일이 없습니다. 신마 고르고, 추천하고 거래하는 일도 조교사가 합니다. 말 관리도, 기수 선정과 경주전략도, 치료와 퇴역결정도 조교사가 합니다. 마주는 말 값 내고, 관리비 내는 일 말고는 할 게 없습니다.
마주들은 능력있는 조교사, 우수한 조교사가 누군지 알고싶어 합니다. 누가 우수한 조교사일까요?
간단하지 않나요?
대상 경주 우승하는 조교사, 다승 1위 조교사, 승률 1위 조교사가 유능한 조교사 아닌가?
수상이 되기 보다 더비경주 출전 말의 마주가 되고 싶다.
처칠이 한 말입니다. 처칠은 말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말도 헀습니다.
당신이 직접 조작한 통계가 아니라면 통계를 믿지 마라.
통계의 거짓말이란 건 들어보셨을 겁니다. 통계에 속지 않는 방법으로 베스트셀러 '팩트풀니스'에서는 절대로, 절대로 숫자는 혼자 두지 말라고 합니다. 반드시 다른 숫자와 함께 두라고 합니다.

51조에 있을 때 일입니다. 마방에 날렵한 청년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조교사가 소개했습니다.
이번에 기수학교 수석 졸업한 기수에요. 우리 마방에 배정됐어요.
이번엔 몇 명 졸업했어?
두 명이요.
또 다른 유머도 있습니다.
저 분 베팅 열심히 하셔. 경마해서 백만 장자가 됐어!
경마하기 전엔 재산이 어느 정도였어요?
전엔 억만 장자였지.
대상경주 우승, 다승, 승률 또한 숫자는 혼자 두면 안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지난 해 김조련 조교사는 30승, 이마방 조교사는 20승 했습니다. 김 조교사가 관리하는 말은 60두, 이 조교사가 관리하는 말은 20두입니다. 누가 유능한 조교사일까요?
다승 숫자 옆에는 반드시 관리 두수를 두어야 합니다.
지난 해 김조련 조교사는 30승 했고, 이 마방 조교사는 20승 했습니다. 김 조교사가 31두, 김 조교사가 32두 관리합니다. 김 조교사 관리 말의 평균 가격은 6,000 만원, 이 조교사 관리하는 말의 평균가격은 2,500 만원입니다. 누가 유능한 조교사일까요?
김조련 조교사의 승률이 15 퍼센트, 이마방 조교사 승률도 15 퍼센트입니다. 두 조교사 모두 30두 관리합니다. 김 조교사 마방은 지난 해 150회 출전했고, 이 조교사는 300번 출전했습니다. 누가 유능한 조교사일까요?
승률과 다승을 함께 보면 되나요? 아닙니다. 상태 좋은 말만 출전시킬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관리 두수가 많다면 승률, 다승 모두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럼 관리 두수만 이 통계 수치에 두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경마통계에 나타나지 않는 숫자가 있습니다. 휴양마입니다. 실제로는 80두 관리하면서 공식적인 관리 두수는 32두로 만듭니다. 컨디션 저조한 말, 경주 끝난 말은 당일 저녁 또는 다음날 새벽에 휴양목장으로 보내면 됩니다.
다승, 승률 순위는 눈속임입니다. 마사회는 의미없는 정보를 제공해서 마주와 경마팬을 착각하게 만듭니다.

2025년 5월 4일 기준 다승 순위와 승률 순위입니다.
여기에 관리 두수만 추가했습니다. (휴양마 숫자는 직전 조교사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차이날 수 있지만, 다르지 않습니다.)
보유 두수 1위부터 8위가 다승 10위를 차지합니다. 당연합니다. 말 많고 출전 많이 하니 우승 횟수도 많을 밖에요. 다승 순위를 반영해서 마사회가 선정하는 연도 최우수 조교사가 얼마나 황당한 짓인지 보여줍니다.
승률도 의미 없습니다. 같은 기간 출전 횟수가 있어야 합니다. (이 자료는 마사회에서 제공하지 않습니다.)
보유 두수 74마리, 휴양 33마리를 보셔야 합니다. 컨디션 나쁜 말, 아직 어린 말, 부상당한 말 순으로 절반을 휴양 보내버립니다. 마방에 있는 말은 전부 출전할 수 있는 전성기의 생생한 말입니다.
다른 조교사는 보유 말 가운데 20퍼센트, 30퍼센트는 훈련하지 못하는 말, 쉬어야 하는 말입니다. 이런 말도 웬만하면 출전시킵니다. 출전해야 출전수당이 있고, 마주의 적자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말이 많은 마방은 승률이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퍼거슨 감독 시절 맨체스터유나이티드와 비슷합니다. 보유 선수 50명 전부가 다른 팀 가면 스타선수급이라 1군과 2군 차이가 없었습니다. 자금력 약한 구단은 1군과 2군의 실력차가 큽니다. 한 시즌 경기하면 반드시 고장나는 선수 나옵니다. 그래서 2군이나 유스 선수를 써면 경기력은 뚝 떨어집니다. 맨유는 전부 1군 선수라 누가 부상을 당하던 경기력은 항상 최상입니다. 맨유의 우승 비결이고, 다승 승률 1위 비결입니다.
대상 경주 우승은 우수 조교사 잣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소설 시비스킷 보면 조교사 톰 스미스는 버림 받은 말, 최하급 경주에서도 꼴등하는 시비스킷의 재능을 알아봅니다. 마주에게 구매를 권유했고, 훈련시켜 최고의 명마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시비스킷만 보지 말고 관리한 말의 숫자를 봐야 합니다. 톰 스미스가 시비스킷 한 마리만 관리한 게 아닙니다. 마주 하워드는 마방이 부족할 정도로 경주마를 구매했습니다. 왜 다른 말은 시비스킷처럼 뛰어난 성적을 거두지 못했을까요? 왜 톰 스미스는 시비스킷 은퇴 후 대상경주 우승마를 한 마리도 배출하지 못했을까요?
미국에서 국민경주마라 부르는 스토미를 단돈 200달러에 구입해서 삼관마를 이기고, 역대 최다 상금을 기록했던 제이콥스가 있습니다. 조교사로 데뷔해서 마주도 하고 목장도 경영했습니다. 독특한 안목으로 저렴한 말을 구입했고, 자신만의 훈련법으로 조교사 최다승, 최고 승률을 기록해서 미국 연방조사국 FBI의 수사까지 받았던 인물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조교사에게 명마는 스토미 한 마리였습니다. 왜 스토미 이후 대상경주 우승마를 배출하지 못했을까요?
한국에서는 새강자를 비롯해 수많은 대상경주마를 배출한 박원선 조교사가 있습니다. 명마를 알아보고 발굴하는 능력, 말을 관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언론에서 떠들었습니다. 이 분이 조교사 은퇴 후에는 부산경남경마장 마주로 활동했습니다. 단 한 마리의 대상경주마도 없었고, 마주 성적 또한 신통치 않았습니다.
밥 버펫이 대상경주에서 우승하는 건 더비에 나갈 만한 말을 끝도 없이 데려오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신이 2세 가운데 더비 우승마를 발굴할 능력이 있다면 직접 말을 살 겁니다.
대상 경주 우승마는 우연히 찾아오는 행운입니다. 관리하는 말이 많을 수록 행운이 찾아올 확률은 높아집니다.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대상 경주 우승 조교사가 유능한 조교사를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없습니다.
경마장은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 또는 명성의 경제(Economy of Reputation)가 지배하는 곳입니다.
말을 많이 보유한 조교사일수록 더 많은 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다승 1위 할 수 있습니다. 마주에게 알려지고 경마팬이 인정합니다. 예상가와 마사회 방송에 자주 거론됩니다. 더 많은 마주가 찾아옵니다. 비싼 말, 좋은 말을 생산자가 소개합니다. 맘에 드는 말은 가격 상관없이 확보할 수 있습니다. 전에 비해 더 좋은 말로 마방을 채웁니다. 말이 많으니 신마는 오래 휴양시켰다가 힘 쓸 시기에 바짝 경주에 출전시키고 내림새 보이면 바로 퇴역시킵니다. 비싸고 좋은 말이 많으니 대상경주 나갈 말이 나올 확률도 높아집니다.
다승 승률은 더 높아집니다. 대상 경주 우승도 자주합니다. 더 유명해지고, 명 조교사 소리 듣습니다. 찾아오는 마주가 더 늘어납니다.
한번 하락세를 겪은 마방은 계속 하락합니다. 찾아오는 마주가 없습니다. 신마는 언제나 가격을 염두에 두고 말을 골라야 합니다. 부상으로 경주 부적격 판정 받지 않는 한 계속 보유해야 합니다. 이미 한계가 온 말도 계속 관리해서 경주에 출전시켜야 합니다. 신마를 바로 데려와서 훈련해야 합니다. 마주 눈치 보며 싼 가격이 아니면 신마를 사지 못합니다. 상태가 나쁜 말도 출전수당으로 마주의 손실을 줄이기 위해 출전시켜야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다승, 승률 성적이 나올 수 없습니다. 대상경주 우승은 꿈도 꾸지 못합니다. 마방은 더 쪼그라듭니다.
다승, 승률 높은 조교사에게 말을 위탁하는 마주는 어떨까요?
조교사가 관리하는 말이 많습니다. 웬만큼 비싼 말 아니면 맡기기 힘듭니다. 고가마, 조교사가 원하는 말 사야 합니다.
관리사 수는 한정되어 있으니 훈련할 수 있는 말도 제한이 있습니다. 출전기회가 줄어들 수 밖에 없습니다. 훈련 부담이 적은 단거리 경주에 집중합니다. 말이 조금만 이상하면 휴양 보내버립니다. 약간의 쇠퇴 기미만 보이면 퇴역시키자고 합니다.
좋은 말만 훈련시켜서 출전하기도 바쁩니다. 자기가 산 말이라도 능력없는 말은 관심 줄 수 없습니다. 경주 끝나면 당일에 말 차에 태워서 휴양 목장 보내버립니다. 부상은 다음날 아침이 되야 확인할 수 있는데 제때 확인하지 않아서 치료하지 못해서 퇴역해도 조교사는 손해 볼 게 없습니다. 좋은 말, 출전해서 성적낼 말만 휴양 보내지 않고 마방에서 관리하면 됩니다.
대형 마방에 보유 두수가 늘어날 수록 소속 마주님의 말 출주회수는 줄고, 적자는 늘어납니다. 조교사만 꽃길 걷습니다.
이런 사정 모르는 마주님들은 조교사 말만 듣고 왜 보유두수 제한 풀지 않느냐고 협회에 항의한다고 들었습니다.
마사회가 제공하는 다승통계, 승률 통계는 말 보유두수 통계와 똑 같습니다. 다승, 승률은 유능한 조교사를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럼 어떤 조교사가 유능한 조교사일까요? 다음 네 가지일 겁니다.
BEST: 싼 말 사서 부상없이 관리하고 대상 경주 우승마로 키워주는 조교사
GOOD: 비싼 말 사더라도 부상없이 관리하고 대상 경주 우승마로 키워주는 조교사
REASONABLE: 비싼 말이든, 싼 말이든 구입하는 말은 전부 말 구입비와 관리비 뽑아주는 조교사
ACCEPTABLE: 능력없는 말이라도 잘 관리해서 출주수당으로 밥 값은 벌어주는 조교사
한 마디

로 마주 손익관리 잘 하는 조교사입니다. 이런 조건 갖춘 조교사가 있을까요?
은퇴하신 지용훈 조교사, 김대근 조교사를 꼽을 수 있습니다. 현역 조교사 가운데 누가 가장 유능한지 궁금하실 겁니다. 조사와 분석이 필요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마사회나 협회의 통계 자료로는 분석이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