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제격이지만, 겨울에도 먹으면 속이 든든해지는 음식이 추어탕이다. 서울지방의 추어탕은 전통 있다. 통미꾸라지와 두부를 넣는 게 다르다. 미적지근한 물에 찬 두부 넣으면 살아있는 미꾸라지는 찬 두부 속에 들어가 함께 익는다. 여기에 사골국물, 고추장, 고춧가루, 후추로 맛을 내 얼큰함과 씹는 맛을 즐긴다. 미꾸라지 숙회라는 음식도 있다. 기름 둘러 달군 솥에 뛰는 미꾸라지 넣고 한가운데 생두부 넣으면 미꾸라지는 서늘한 두부에 필사적으로 파고든다. 미꾸라지가 촘촉히 두부에 박힌 채 익으면 칼로 잘라 먹거나, 전 붙이기도 한다. 왜 갑자기 추어탕이냐고? 2019년 경마계획 읽으며 숙회가 생각났다.

마사회 경마계획 보면 2019년에 잘 하는 게 많다. 우선 경주분류위원회를 만들어 대상경주와 특별경주 관리한다. 매년 출전조건 바뀌고, 거리 변경해서 대상경주의 권위와 전통이 떨어지는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다. 늦었지만 참 잘하는 조치다. 칭찬해야 한다.
내년부터는 2등급 경주도 분할한다. 모르는 분을 위해 간단히 설명한다. 마사회가 매월 경주계획 발표하면 토요일, 일요일에 말 출전시키려는 조교사는 -마주를 대신해서- 목요일 오전에 마사회에 출전신청한다. 그런데 어떤 경주는 20마리가 출전하겠다고 나서고, 어떤 경주는 출전하겠다는 말이 5마리다. 마사회는 7마리 이하 말이 출전하는 경주는 취소하고, 출전신청 말이 많은 경주는 분할해서 두개의 경주로 만든다. 지금까지는 2등급, 1등급 경주는 한 경주에 50마리가 출전신청해도 분할하지 않았다. 설명이 복잡하지만, 마사회 직원의 편의주의에서 나온 관행이었다. 내년부터는 2등급 경주도 출전신청한 말이 많으면 분할하겠다는 얘기다. 경마팬은 더 흥미진진한 경주를 즐길 수 있고, 2등급 경주마 가진 마주에겐 출전기회가 많아지니 좋은 일이다.
포입마의 경주 출전 제한조치를 완화한다. 포입마는 엄마말이 외국에서 임신한 채로 한국에 와서 낳은 말이다. 그동안은 일반경주만 출전가능했다. 국산마 대상경주, 국산마 특별경주에 출전 못했는데 점차적으로 출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포입마의 대상/특별경주 출전제한에 대해서는 경마 아는 사람들은 모두 문제를 제기했다. 늦었지만 소식 있으니 다행이다.
9착까지 출주장려금을 지급하기로 했단다. 2018년에는 8착까지 출주장려금을 지급했다. 이게 왜 잘한 일인지 설명하려면 길다. 적자 누적으로 경주마 구입의욕이 사라지고 마주증 반납하는 마주가 증가하는 현상 줄이려면, 필요한 조치다. 여기까지 2019년 계획에서 평가할 만한 조치다.
한심한 내용도 있다. 첫째, 마사회 보고서에 일관성이 없다. 부서마다 계획의 전략적 목표가 다르다. 경영기획실은 수익성 강화(가치 창출), 공공성 확립(건전화, 이용자 보호), 대중성확보(경마매력도 향상)를 전략적 목표로 정했다. 그럼 부서계획도 이 목표와 일치해야 한다. 국제화 계획, 경마시행계획에는 이 목표와는 전혀 다른 목표를 적었다. 김낙순 회장의 뛰어난 경영능력 탓이다. 어느 페이지에서는 상생을 말하고, 어느 페이지에서는 경쟁 강화를 이야기한다. 양껏 먹으면서 살 빼겠다는 말이다. 해외 사례 시사점과 마사회의 국제화 사업 목표가 다르다. 경마고객의 기본욕구 충족, 경마의 국제사업화 지향한다고 잠꼬대 한다.
둘째, 경마계획 새울 때마다 지난해 계획을 카피앤페이스트(Copy & Paste)한다. 회장의 무능과 경마 무관심이 만든 작품이다. 미승리마 경주하겠다, 경매마 우대하겠다, 암말 우대하겠다, 퇴역한 말의 자마 우대하겠다, 브리지업마 우대하겠다는 타령이다. 상금 더 주고, 특별경주 만들겠다는 말이다. 이미 해본 적 있지만, 평가도 없고, 효과도 의심스런 소리를 한해 걸러 해댄다. 퇴임하는 마사회장마다 하는 말이 있다. '임기 끝날 때쯤 되니 경마가 뭔지 알 것 같다. 마사회 직원의 무사안일과 보신주의 때문에 힘들었다.'
셋째, 외산마 우대정책이다. 외산마는 처음 네번 출전할 때까지 상금 관계 없이 출전 우선권 준다. 외산마 우대한답시고 네 번을 여섯 번으로 늘렸다. 여기다 최초 레이팅을 2점 줄여준단다. 이런다고 마주들이 외산마 살까? 네번 나가서 5등 한번 못하는 놈은 여섯번 해도 마찬가지다. 레이팅 2점 줄이면 부담중량 0.5kg 낮다. 53Kg으로 안되는 놈은 52.5Kg으로 뛰면 될까? 마주들이 외산마 사지 않는 이유를 정말 몰라서 이짓 할까?
넷째, 영천경마장 건설 끝나면 부산말 데려다가 경주한다. 지금도 부산에는 경주마 투자가 부진해 만성적으로 경주마가 부족하다. 마주도 없고, 경주마도 없다. 위대한 현명관표 경마혁신(안)의 서울부산 마주 통합작업 때문이다. 그럼에도 부산말 데려다 경주한다? 멋진 계획이다.
압권은 외산마 구매제한 완화다. 현재 외산마는 출전경험 없는 말만 구매할 수 있다. 가격제한도 풀었다. 한데 2020년부터 경주경험 있는 말도 구매할 수 있게 한다. 이건 내가 농담으로 한 말이다. 가격제한, 도입제한 다 푼다고 하길래 '그럼 왜, 출주경험 없는 말로 한정하나? 홍콩, 일본은 그런 제한 없다. 출전경험 있는 말도 허용해야지? 경주마 수준향상한다며? 경쟁강화한다며?'라 비꼬았더니 정말 그렇게 했다. 마사회 사람에겐 농담도 못한다. 출주경험 있는 외산마까지 도입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미국 경매장에서 말 사면 바보다. 클레이밍 경주에서 경주능력 확인한 놈 사오면 된다. 데려와서 바로 경주 투입할 수 있다. 미국 조교사가 훈련 시킨 말이다. 미국 경주에서 바닥인 말도 한국 오면 1군까지 간다. 지금 경마장에 있는 외산마, 국산마는 1군, 2군 경주에서 상금벌 생각버려야 한다. 우린 이미 경험했다. 교훈은 잊어버리고 멍청한 일 벌인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경마혁신(안)을 폐기하고 한국경마, 마사회의 생존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임에도, 미꾸라지처럼 우선 서늘한 두부속으로 파고든다.
한국경마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 장외발매소 설치 때문이다. 부정할 수 없다. 그 장외발매소가 현 수준 유지 조차 어렵다. 폐쇄되는 발매소가 늘어나고, 새로운 장외발매소 설치하려면 사전영향평가가 의무화된다. 신규 장외 발매소 설치는 불가능하다. 사행산업에 대한 규제는 날로 강화된다. 1일 및 1회 마권구매액을 50 퍼센트 하향 조정하고 전자카드 사용 의무비율도 늘어난다. 그럼에도 정부의 사행산업 정책은 힘을 얻는다. 우리나라 사행산업 규모는 국민총생산 대비 0.57퍼센트로 OECD 국가 평균수준이다. 그간 우리 사행산업의 규모가 경제규모에 비해 컸다는 말이다.
현명관표 경마혁신(안)의 영향으로 입장객은 줄었다. 그럼에도 매출액은 3퍼센트 감소로 방어했다. 빠져나간 사람은 재미로 소액배팅하는 사람들이고, 제대로 경마에 중독된 사람들, 고액 베팅하는 사람은 남았기 때문이다. 인당 베팅액은 1일 1인 69만원으로 증가했다. 한달 740만원이다. 한달에 700만원 경마하는 사람들, 경마팬이라 할 수 있을까? 마사회 스스로도 도박장화 된 발매소라고 분석했다. 경마가 지속가능하려면 새롭게 유입되는 경마팬이 있고, 소액 레저팬이 있어야 한다. 이들 중 일부가 고액배팅가로 바뀐다. 새로운 20대, 30대 경마팬, 소액 레저 경마팬의 경마장 출입은 아예 막혀있다. 현명관이 주차장 유료화하고, 입장료 올리고, 장외발매소 입장료 인상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경쟁자도 등장했다. 인터넷 도박이다. 불법 스포츠 도박, 인터넷 게임 도박이다. 20대는 여기에 빠져 있다. 경마보다 재밌다. 이들이 향후 경마로 유입될 가능성은 적다. 현재 경마하고 있는 중장년층 고액배팅 손님만 경마 매출을 지탱한다. 마사회관심은 경주 수 확대, 고액 배팅 손님 편의 제공으로 이들의 '주머니 빨리 털기'에 촞점이 있다. 앞으로 새로 고액배팅 손님이 될 계층이 없다. 10년 뒤 이들이 경제력 잃으면 경마는 죽는다. 그 전에도 지금 가진 돈 다쓰면 경마매출은 폭락한다. 미꾸라지 숙회가 된다.
사행산업 규제강화, 경쟁산업 출현, 매출 하락, 이런 현상을 보이면 어떤 조치가 필요하겠는가? 재미로 경마하는 소액배팅, 경마장 찾는 손님을 늘릴 방안을 궁리해야 한다. 경마가 재미있고,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스타경주마가 나와야 한다. 건전하고 소액배팅하는 경마, 재미로 경마장 찾는 사람을 늘려야 한다. 적은 돈으로 배팅하고, 운 좋으면 수백 배 맞히는 삼쌍승, 5연속 단승 같은 승식을 도입해야 한다.(무식한 국회의원이 고배당 승식 생기면 사행성이 증가한다고 말하면, 실증자료로 설득해야 한다.도박중독자들은 고배당 노리지 않는다. 적은 돈으로 행운 바라는 로또같은 승식이 레저다. 도박중독 가능성도 낮다.)
마사회는 온라인 베팅, 경마의 경쟁성 강화만 부르짖는다. 경쟁력 강화하면 마주들이 말 사지 않는다. 경주마가 적으면 뛰어난 말이 출현할 가능성이 떨어진다. 기록도 저하된다. 편성 두수 줄고 경마가 재미없다. 온라인 베팅허용? 지금도 인터넷 도박으로 청소년 도박중독이 심각하다. 어떤 정권이 규제하던 온라인 배팅을 허용하겠는가?
경마장 내부를 보면, 현명관표 경마혁신(안)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레이팅 실시로 경마가 재미없어졌다는 불만이 높다. 마주들이 외산마 사지 않는다. 마사회도 인정했다. 부경의 경주마 수급이 부진하다. 경마혁신(안)에서 가장 자신있게 내세웠던 경주의 상품성 강화, 박진감있는 경주, 착차없는 경주 목표는 완전히 빗나갔다. 자신들 분석으로도 경주기록은 부진하고, 착차는 늘어났다.
정부의 규제는 강화되고 경영환경이 악화되는데도, 중독된 큰 손 배팅꾼에 의존해서 매출유지에만 골몰하는 마사회. 솥의 물은 점점 뜨거워지는데, 밖으로 뛰쳐나갈 생각 않고 두부 속으로만 파고드는 미꾸라지. 나는 같은 처지라 생각했다. 운명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