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월드컵.
들어본 적 있는지 모르겠다. 모른다면 포탈에서 '경마가 알린 두바이의 경제기적'을 검색하시기 바란다. 이 대회에 한국말로는 처음으로 돌콩이 출전한다. 놀라운 일이다. 돌콩은 또한 나와 인연이 있다.
2016년 서울마주협회는 미국 오칼라 경매장에서 2세마 33필을 구매했다. 마주를 대신해서 일괄 구매한 말이다. 구매 신청한 마주에게 다시 경매로 배정된다. 마음에 드는 말을 정하고 얼마에 살지를 적어 제출하면, 가장 높은 가격 써낸 마주가 갖는 방식이다. 2016년 경매에서 가장 인기있는 말은 입찰번호 20번 Proud Citizen 자마였다. 이 말을 돌콩 마주님이 선택했다. 1억 2천만원대로 적은 입찰금액을 내게 보여주며 물었다.
"이 정도면 될까?"
"확실합니다. 충분해요."
천만원 차이로 입찰에 실패했다. 마주님은 깊이 낙담했다. 1차 경매에서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말이 9필이었다. 유찰된 말 9마리 중에 고르겠다며, 조교사가 Afleet Alex 자마를 골랐다. 금방 내 조언을 듣고 참담한 실패와 낙담한 마주님이 다시 물었다.
"얼마 쓰면 될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나 또한 방금 저지른 실수를 잊고, 낙찰가능한 금액을 알려드렸다. 2차에서 낙찰받았고 최종적으로 3,965만원에 샀다. Proud Citizen 자마와 비교할 수 없는 가격이다. 사모님은 단단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돌콩'이라 불렀다. 엉성한 모습의 돌콩은 두달 뒤, 껍질 벗은 나방처럼 완전체로 다시 태어났다. 주행심사 참관한 사모님은 눈 감고 두손 모으며 '하느님! 감사합니다' 를 연발했다. 병치레와 어려움이 있었지만, 돌콩은 무럭무럭 성장해서 한국 경마사상 최초로 두바이월드컵에 출전하는 말이 되었다.
마사회 실무자는 경마 모르는 마사회장이나 농수산부에 설레발 치겠지만, 돌콩이 두바이월드컵 출전하는데 기여한 게 없다. 돌콩은 '우연이 빚어낸 괴물'이고, 마주님은 '행운의 여신에게 선물받은 분'이다. 이게 전부다. 더 이상 설명하는 사람 있다면 그는 사기꾼이다. 내가 가까이서 모든 걸 지켜봤기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세계 주요 방송사가 생중계 또는 녹화중계하는 대회다. 세계 최고의 말 전문가들이 모여 가치를 평가하는 미국경매장에서 아무도 돌콩을 주목하지 않았다. 2세마 때 수억, 수십억대 가격 말이 경쟁하는 두바이월드컵에 4천만원(3만 5천불) 헐값에 팔린 말이 출전한다? 이만한 신데렐라 스토리가 없다. 이 정도면 우리 공중파에서도 중계해야 한다. 그럴리 없지만, 혹시 중계한다면 경주만 볼 게 아니라, 아랍인이 입는 옷도 보시기 바란다.
남녀 모두 하얀색 원피스다. 남자가 원피스를 입는다? 지금까지 상상해 본 적 없기에 두바이 메이단 경마장 갔을 때 주변에 물었다.
전통 아랍옷 입으면 어때?
정말 좋단다. 시원하고 움직임 편하단다. 미얀마 여행하는 사람들도 그곳 남자들이 입는 전통치마 입어보고 시원하고 정말 편하다 평한다. 우리 남자들은 왜 치마 입지 않을까? 남자는 바지, 여자는 치마라는 공식은 왜 생겼을까?

남자가 치마입는 일이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인류가 만든 최초의 옷은 원피스 형태의 털옷이었다. 가장 쉽게 만들 수 있다. 동물 가죽 두 장 붙여 자루모양으로 만든 다음, 목과 팔다리 들어갈 곳만 뚫으면 된다. 바지 만들려면 옷이 상하 구분되어야 하고, 사타구니 길이와 다리길이 맞추어야 한다. 원피스형 치마에 비해 수십배 작업이 복잡하다. 그리스인 로마 남자도 원피스형 치마입었다. 허리 묶었다는 점만 다르다. 영화에서 보는 고대 이집트인, 이스라엘 사람도 같다. 예수, 공자, 부처, 마호멧 모두 치마입었다. 남녀 구별 없다. 남자도 모두 치마 입었다.
멋 부리기에도 치마가 유용했다. 치마는 다양한 길이, 다양한 소재, 다양한 폭으로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치마에는 화려한 그림도 그릴 수 있다. 그래서 평소에 바지 입는 여자들도 공식행사나 멋 부려야 할 곳엔 치마 입는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남자가 부와 권력 과시를 위해 여자보다 더 화려한 치마를 입었다. 조정에서 남자는 바지를 의무적으로 입으라는 칙령에 강하게 반발했다. 이렇게 만들기 쉽고, 멋 내기 편하고, 시원하고, 편한 치마를 권력 가진 남자들이 왜 포기했을까?
유럽 여자들의 바지 입기 위한 투쟁은 처절했다. 프랑스 여자가 바지 입는 건 최근까지 불법이었다. 18세기 프랑스혁명 때 신여성들은 자유평등박애 정신에 따라 여자의 바지입을 권리를 주장했다. 법으로 금지하지 않았지만 바지는 남자만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프랑스가 이 정도면 다른 유럽 국가는 이야기할 필요 없다. 하지만 혁명이 끝난 뒤 오히려 정부는 '여성바지착용금지법'을 제정했다. 이 법이 공식적으로 폐지된 건 2013년이다. 여자가 바지입는 건 서구역사에서 성해방의 상징이었다. 까짓 바지가 뭐라고, 이들은 왜 그토록 바지에 집착했을까?
이 어려운 문제를 말과 연결시키면 답이 간단해진다. 우리는 아마존 여전사에 대해 들었다. 필요할 때 이웃 부족 남자 납치해서 임신한 다음 죽여버리고, 태어난 애기가 사내면 돌로 눌러 죽이고 성장한 여전사는 한쪽 유방을 잘라 활쏘기 편하게 키운다는 전설이다. 나도 아마존강에 사는 여자 전투사 이야긴 줄 알았다. 역사적으로 아마존은 동유럽에 있는 지역이름이다. 브라질의 아마존은 스페인 군대가 붙인 이름이다. 캐나다나 미국에 유럽 지명이 많은 걸 기억하면 된다. 스페인 군대는 말을 사용할 수 없는 아마존밀림 부족을 정벌하는 데는 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포기했다. 이 싸움에서 그들은 고대 아마존 여전사를 떠올렸다. 동유럽 아마존 부족은 기마군대였고 여자가 대장이었다. 유럽이나 중앙아시아 정착민을 공격한 말 탄 유목민 군대는 여자가 지휘하는 사례가 많았다. 용맹했고, 막기 힘든 적이었다. 정착민들은 알 수 없는 유목민에 대한 괴담을 만들었다. 이 여전사들이 치마입고 말 탔을까?
바지는 말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발명품이다. 겨울 추위 때문에 바지 입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추우면 더 두꺼운 치마, 더 따뜻한 치마를 만드는 게 정상이다. 진화나 발명은 이전에 이루어진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한다. 바지의 발명 목적은 추위 때문이 아니라 말 타기 위한 발명품이다. 말 타는데는 반드시 바지가 있어야 했다. 원피스 형태의 치마를 허리까지 올리고 말 타면 무슨 일이 생길까? 20분도 지나지 않아 허벅지와 무릎, 엉덩이에 피가 줄줄 흐른다. 살이 벗겨지고 벗겨진 살이 말 가죽에 쓸릴 때 따끔한 고통은 겪어본 사람만 안다. 이 고통을 줄이려면 엉덩이와 허벅지, 무릎에 가죽을 붙여야 한다. 말 탔을 때 말과 닿는 부분에 가죽을 댄 게 바지의 기원이다. 바지길이는 점점 내려와 발목까지 닿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지다. 말 타기 위한 필수품이므로 아마존 여전사가 바지입는 건 자연스러웠다. 유목민 여자가 말 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제한 없이 바지입었다. 남자들은 매일 말 타야했으므로 아예 치마가 필요 없었다. 말 타지 않는 여자는 평소에 치마, 말 탈 때만 바지 입었다.
기마유목민의 후손인 고구려, 백제, 신라, 일본 남자는 자연스레 바지만 입었다. 한국이나 일본 여자들이 치마 입은 이유는 단지 말 탈 일 없었기 때문이다. 유럽은 달랐다. 말은 아무나 탈 수 있는 동물이 아니었다. 말 탄다는 건 기사만 가능했다. 기사도가 생겼고, 기사는 바지를 입었다. 바지는 높은 신분, 남자만 입을 수 있는 복장이 되었다. 여자가 바지 입는데는 엄청난 투쟁이 필요했고, 여권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에서 말 타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5만명 내외다. 말도 타지 않으면서 바지를 고집하는 이유가 뭔가?
남자의 고환은 더위에 치명적이다. 고환이 밖으로 돌출된 이유가 열을 식히기 위해서 였다. 치마는 고환에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정력에 좋다면 물불 가리지 않는 우리다. 무더운 여름날, 치마가 얼마나 시원하고, 편한지 경험해 보고 싶지 않는가?
나도 이번 여름엔 치마 한번 입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