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 내 언어들의 희망 또는 그 고통스런 조건·Ⅱ
-조용한 생
오태환
그는 염장이, 요즘 쓰는 말로 장례지도사였다 선천적 성대기형으로 말을 하지 못했다 애면글면 입술과 혀를 늘려서, 아무리 말을 하려 해도 자모음이 버무려지지 않은, 단수된 수도꼭지에서 나는듯한 바람소리만 서늘하고 헐겁게 샜다. 그가 하루에도 몇 구씩 시체의 선득선득한 살점을 알콜과 탈지면으로 세척하고 냉구들장처럼 딱딱한 관절을 주물러 펴며, 매번 드는 생각은 그때마다 세계가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해진다는 것이었다 식은 부지깽이 같은 팔다리를 흰 창호지로 묶거나 검게 가문 낯에 밑화장을 할 때도, 오동나무 관을 보공補空으로 채워 넣을 때도 매한가지였다 염습을 할 때마다 세계가 조용해지는 게,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벙어리였기 때문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그의 확신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점점 더 또렷해질 따름이었다
휴대폰 문자로 난생처음 해고를 당한 그는 상조회사 쪽에 까닭을 따지는 대신, 자판을 두드려 바다로 가는 고속버스를 예매했다 바다가 보이는 벼랑 끝에서 그는 누구에겐가 뭐라 말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성대를 비집고 나오는 것은, 짜장 단수된 수도꼭지에서 새는 성싶은 서늘하고 헐거운 바람소리가 전부였다 그는 허리께에서 백만 톤은 됨직한 거대하고 뜨겁고 투명한 무쇠닻을 꺼내 천천히, 젖심까지 기울여 바닷물 속으로 부리기 시작했다 이제 많이 늙은 그의 눈시울에서 시나브로 낮별 하나가 희미하게 결로結露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