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경기 연속골이다. 1월 23일부터 2월 16일, 아스톤빌라 전까지 골이 이어진다. 프리미어 리그 9골, 챔피언스리그 5골, FA컵 2골로 시즌 16골을 기록했다.
윤석렬과 검찰의 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북미 관계 악화, 대일긴장관계...우울한 소식만 가득한 요즘 모두들 손흥민 축구 보는 재미로 산다.
손흥민에겐 흥윤이란 형이 있다. 축구선수로 독일에 진출해서 5부리그 선수로 활동한 경력도 있다. 지금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축구교실 코치로 일한다.
손흥민과 손흥윤.
경주마로 치면 전형제마(全兄弟馬)다. 아버지, 어머니가 같다. 조교사도 같고 마방도 같다. 같은 방식으로 훈련 받았다. 그럼에도 축구 능력에는 차이가 있다. 차범근 감독 아들 차두리도 같은 경우다. 차두리 형제는 축구를 아예 시작하지 않았다.
스포츠 선수에겐 노력으로 안되는 부분이 있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능력은 하나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전문화된 특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고, 이 전문 프로그램이 연결되어 정신육체능력을 만들어 낸다. 쉽게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생각하면 된다. 프로그래머가 인공지능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프로그램이 학습을 시작한다. 바둑 인공지능이 있고, 사물인식 프로그램이 있다. 인간은 이런 프로그램이 수십, 수천개가 장착된 생물이다. 해당 프로그램의 탁월성은 개인마다 다르다. 유전자가 뒤섞이며 형제간에도 각기 다른 특성을 발현한다. 어렵게 이야기해서 미안하다.
인간 능력은 타고나는 부분이 많고, 어떤 성과는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 대부분은 아무리 노력해도 메시나 호날두가 될 수 없다. 기수도 스포츠 선수다. 대부분의 기수는 노력으로 페로비치나 문세영이 될 수 없다.
그럼 탁월한 능력이 없는 기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작년 11월 29일, 문중원 기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를 남겼다. “마사회는 선진경마를 외치는데 도대체 뭐가 선진경마일까. 그저 시설 좋고 경주기록 좋아서 외국 나가서 좋은 성적만 나면 선진경마인가. 지금까지 힘들어서 나가고 죽어서 나간 사람이 몇 명인데…경마장이란 곳은 정말 웃긴 곳이다.” “세상에 이런 직장이 어디 있느냐” “경마장이라는 곳, 더럽고 치사해서 정말 더는 못하겠다” “도저히 앞이 보이질 않는 미래에 답답하고 불안해서 살 수가 없다”며 마사회와 조교사의 갑질, 부당지시에 대한 분노와 고발을 담았다. 유족들은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민주노총과 함께 76일간 거리투쟁을 벌이고 있다. 세종로에 시민분향소 차리고 청와대 앞까지 상여행진도 했다.
아직도 마사회와 유족, 민주노총간 만족스런 협의 결과는 없다. 민주노총은 '적폐권력 한국마사회를 방치하는 농림축산식품부를 규탄'하며 마사회 적폐청산을 위한 서명운동에 들어갔다. 서명 결과를 청와대에도 전달할 계획이란다.
청와대, 구체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이 사안을 모르고 있을까?
노동자의 삶에 관심이 크고, 평생을 인권변호사로 활동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 사안을 모르고 있을 리 만무하다. 청와대에서도 매일 모든 신문기사를 읽는다고 들었다. 상황 파악을 지시하고, 해법을 주문했을 것이다. 총선을 앞둔 중요한 시점임에도 움직임이 없다. 왜?
답이 없기 때문이다.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추정한다.
내게도 주변 사람이 돌아가는 상황과 답을 묻는 사람이 많다. 자칭 경마에 관심있는 사람으로 이 문제에 답할 필요를 느낀다.
경마장 바깥 사람들, 심지어 안에 있는 사람들도 묻는다.
자살한 사람들은 모두들 마사회와 경마를 욕하는 유서를 남겼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었기에 부산경마장에서만 15년간 7명이나 자살했는가 묻는다. 또는 가족도 있고, 자식도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결정을 하냐며 의아해 한다. 자유민주국가에서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이동의 자유가 있는데, 힘들면 다른 곳에서 다른 일 찾아보면 되지, 왜 가족을 끝까지 지키지 않고 자살하느냐는 질문이다.
내 판단으론 이번 일의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경마장 안에 있는 사람은 일반인의 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 일반인은 경마장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경마장 사람들의 사회적응성은 놀라울 정도로 낮다.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는 법적 규정과 처벌, 경마에 대한 일반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생기는 폐쇄적인 친교범위, 경마에만 한정된 생활기술과 능력 때문이다.
경마장 사람은 경마장 바깥 사람과의 만남을 기피한다. 자신은 떳떳해도 언제 경마정보 유출혐의로 징계나 처벌 받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감찰기관이 상시 감시하고, 운 나쁘면 경마장을 떠나야 한다. 운 나빠서 처벌받는 사람을 수없이 지켜본 사람들이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익힌 기술이 경마와 관련된 기술이다. 경마장 밖에서는 경제적 가치가 없는 기술이다. 경마장 나갔을 때 선택의 범위는 좁아진다.
친교범위가 폐쇄되어 있으니 경마장을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른다. 전직 경마관계자가 경마정보 유출자일 가능성이 높으니, 먼저 경마장을 떠난 선배도 만나지 않는다. 다양한 형태의 삶에 대한 경험도 정보도 없다.
경마관계자는 경마장 사람만 만나고, 영화 트루먼쇼의 트루먼처럼 경마장이 전부인 세상에서 산다. 경마장이 세상 전부인 사람에게 경마장 떠나면 죽음이고, 경마장에서 살기 힘들어지면 그 또한 죽음이다.
기수, 관리사뿐 아니라 마사회직원도 예외가 아니다.

경마장은 숨겨진 세상이다. 밝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말을 모르고, 경마장을 모르고, 경마제도를 모른다. 문제가 생겨도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알려고 하지 않는다. 피해자 호소를 듣고 피상적 요구를 하거나 해결책을 마사회 직원이나 간부에게 묻는다.
민주노총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적이 좋지 않은 기수에게도 기승기회 부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면허취득 순서대로 조교사 개업, 주기적으로 박탈여부를 결정하는 기수 면허갱신제도 폐지를 요구했다. 이런 요구에 마사회는 경주에서 우승한 말부터 5등까지 주는 상금 차이를 줄이고, 우수한 기수가 경주에 출전할 수 있는 횟수를 제한하겠다는 제도개선책을 내놓았다.
민주노총의 요구는 생뚱맞고, 마사회의 대책은 어이 없다.
민주노총에서 요구한 내용 중 조교사면허 딴 순서대로 마방대부, 기수면허 갱신제도 폐지는 검토할 여지가 있다. 예전에 시행했던 제도다. 뚜렷한 문제점도 없던 제도를 경마선진화 한다며 급조 개악한 제도니 원래대로 돌리거나 개선하면 된다. 나머지는 잘못된 요구다.
일부 유능한 기수가 마주나 조교사에게 선택받는게 잘못인가? 이 기수들의 능력발휘 기회를 제한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문중원 기수가 유서에서 지명한 마방대부심사 부정은 경찰에서 조사하고 있다. 경찰 조사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처벌할 수 있나? 만약 부정이 없었다는 결과가 나오면 해당 직원의 피해는 어떻게 보상할까? 잘못이 확인되지 않은 시민을 처벌하는게 민주국가에서 타당한 일인가?
마사회가 제시한 상금차등 완화, 기승횟수 제한은 논의할 가치조차 없다. 프리미어 리그에서 선수 출전횟수나 경기출전시간 제한하겠다면 모두들 뭐라 할까? 선수 소득 평준화를 위해 연봉 격차 줄이겠다 하면 팬들이 뭐라 할까?
다행스런 일은 시위와 협상이 이어지며 주제가 점차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노총에도 연구원이 있고, 경마제도에 대한 지식을 갖추면서 해결의 주체가 마사회가 아니라는 사실, 임기응변식 제도개선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농림부가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성명, 마사회 제도의 미세조정이 아니라 켜켜이 쌓인 마사회의 적폐를 개선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그래서 이 사태 해결에 대한 내 의견을 적는다.
첫째, 부산경마장 뿐 아니라, 서울경마장, 기수뿐 아니라 관리사와 마사회 직원까지 경마장은 죽음의 저기압대다. 몇 가지 제도 개선한다고 죽음을 해결할 수 없다. 이어지는 자살을 막으려면 바닥부터 개선해야 하고, 마사회의 대책으로는 불가능하다. 관리책임을 가진 농림부가 나서야 한다는 민주노총의 지적은 타당하다. 관리능력이 없다면 문화체육관광부나 총리실로 관리책임을 넘겨야 한다. 농림부의 응답이 없다면 총리실과 청와대에 관리부처 변경을 적극적으로 건의해야 한다.
둘째, 마사회 사회공헌 재원의 용도 변경이 필요하다. 그 동안 마사회는 경마에 대한 인식변화와 기업이미지 개선을 위해 수십년간 엄청난 금액을 사용하며 사회공헌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이번 일로 모두 허사가 됐다. 앞으로도 수십년간 경마와 마사회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재원을 경마종사자의 복지를 위해 우선 사용해야 한다. 경주의 안전, 경주마 복지, 관리사와 기수, 마사회 직원의 정서안정 교육과 소양교육, 사회성 향상 교육에 사용해야 한다. 경마장을 떠난 뒤 적응 교육에 사용해야 한다. 사회공헌은 그 다음 순위다. 이웃과 동료의 안전도 챙기지 못하는 회사가 사회와 인류공헌 활동에 나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셋째, 경마와 관련된 입법 기능을 마사회에 맡겨선 안된다. 농림부 또는 문체부 산하 연구기관을 통해 입법하는 관행을 정착해야 한다. 또한 경마관계자 신상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조직(예로 심판위원회, 등록위원회, 자격심사조직 등)은 마사회와 분리해서 별도의 독립기관으로 운영해야 한다.
자살하는 경마관계자가 이어지는 오늘의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마사회가 경마에 관한 입법, 사법, 행정을 모두 한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넷째, 단기적으로는 경마제도 개선이 있어야 한다. 조교사 면허와 마방대부심사 이원화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이원화 되면서 마사회 직원의 재량권이 넓어지고, 오해의 소지가 확대됐다. 이전에 순서대로 대부할 때 문제점이 없었다.
관리사의 고정급은 확대하고 실적급은 줄여서 고용과 급여를 안정화해야 한다. 관리사는 말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관리사에겐 말 관리만 맡겨야 한다. 경주마 훈련과 치료는 별도의 전문직에 맡겨야 한다. 치료는 수의사가, 훈련은 트랙라이더가 해야 한다. 관리도 하고 훈련도 하는 지금의 체계는 전근대적 관행이다. 그렇게 되면, 관리사의 노력과 말의 성적은 무관하다.
기수는 스포츠 선수다. 손흥민과 손흥윤의 예처럼, 운동선수는 어느 정도 타고난다. 기수학교 졸업하고 기수자격증 딴다고 성적과 무관하게 기승기회를 준다든가, 소득을 보장해 줄 수는 없다.
이럴 땐 능력없는 기수의 진로가 문제된다. 어린 청소년에게 장미빛 꿈을 심어주고 힘든 기수학교를 마친 기수를 개인사업자라고 방치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기수의 진로와 삶의 안정화를 마사회는 책임져야 한다.
홍콩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매년 다수의 기수후보생이 홍콩기수학교를 졸업하지만, 홍콩경마장에서 활동하는 기수는 극소수다. 수습기간 뛰어난 성적을 보여야 하고, 해외에서 일정수준 승수를 기록해야 홍콩에서 기수로 활동할 수 있다. 이 검증을 통과하지 못한 기수들은 모두 트랙라이더로 활동한다. 이들도 이 상황을 받아들인다.
홍콩 경마장에는 다수 외국 기수가 활동한다. 이 때문에 조교사가 부당한 경주지시를 내리기 어렵다. 경주의 질도 높이고, 부정도 방지한다. 기수의 경력 경로도 안정화된다.
민주노총의 참여로 경마관계자 자살문제가 근본적 해결책 모색 단계로 이행하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총리실과 농림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한국경마를 선진화 시키고, 국민의 레포츠로 개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