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혁신제품은 조잡하다

세그웨이라는 탈 것 본 적 있는가?
위 사진에서 보는 물건이다. 2001년 출시했는데, IBM을 비롯해서 우리가 아는 글로벌 회사가 협력해서 개발했다. 그해 미국에서는 21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PC만큼 어마어마 할 것'이라고 말했다. IT 전문가 존 도어는 '세그웨이가 인터넷보다 훨씬 큰 가치를 갖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자동차를 대체할 이동수단,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혁신제품으로 전문가의 관심을 끌었다. 근데 결과는?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다. 내가 이렇게 길게 설명해야 하는 제품이 됐다.
혁신성이 부족해서? 제품에 문제가 있어서? 기능이 만족스럽지 못해서? 모두 아니다. 사회경제적 요인이나 경로의존성 요인으로 실패하는 발명품은 셀 수 없다.
반대로 절대 성공 못한다는 발명품이 지금은 없으면 못 사는 제품이 된 예도 많다. 우리가 지금 보는 거의 모든 제품이 그렇다.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소음은 대포소리와 구분이 어려웠고, 속도는 마차보다 느리며, 갑자기 폭발해서 타고 있는 사람을 죽였다. 자동차 타는 사람은 익스트림 스포츠 즐기는 동호회원 뿐이었다. 자동차가 대중적으로 성공할거라 생각한 사람은 당시에 없었다. 예로 인공지능이 처음 나온게 1970년이다. 몇번 실패한 뒤 전문가들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세돌을 이기기 전만 해도 인간을 이길 수는 없다고 했다. 새로운 제품이 시장에 자리잡기 전에 항다반사 생기는 일이다. 혁신 연구하는 사람들에겐 상식이다. 혁신제품 성장의 특징을 모르는 사람은 초기제품의 성능과 기존 제품을 비교하고 실패한다고 단정한다. 성공할 수 없다고 강변한다.
경마장의 인조주로도 예외가 아니다.
'인조주로를 포기한다.'
경마하는 사람이라면 들어본 적 있는 미국 대형 경마장, 킨랜드 경마장과 델마 경마장이 2014년 인조주로를 포기하고 모래주로 - 정확하게는 진흙 - 더트로 복귀한다는 뉴스를 발표했다. 이 보다 앞서 2010년 유서깊은 캘리포니아 산타아니타 경마장이 인조주로를 포기하고 더트주로로 복귀했다. 인조주로 설치가 관심을 끌었던 만큼 미국을 대표하는 3대 경마장의 더트 복귀가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했다. 주로에 관심있는 국내 경마전문가에게 주는 의미는 확실했다. 인조주로는 실패라는 것이다. 3대 경마장이 왜 인조주로를 버리고 더트로 복귀했는지는 묻지 않았다. 더트에 비해 문제가 많고, 경주에 부적합한 주로이기 때문이라고 간단하게 결론지었다.
이후 한국 경마장에서 말이 죽어나가고 기수는 불구가 되는 사고가 빈발하면서 주로 문제가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를 때도 인조주로는 관심 밖이었다. 모래의 질과 깊이를 따지고, 바닥 평탄도를 분석했다. 일본과 호주, 홍콩 주로전문가를 불러 경주로 개선 자문 받을 때도 인조주로는 거론하지 않았다.
정말 인조주로가 더트에 비해 문제가 많아서, 적합하지 않아서, 더 위험해서, 경제성이 없어서 이들 3대 경마장이 더트주로로 돌아갔을까?
인조주로를 도입한 다른 경마장들
델마, 킨랜드, 산타아니타 경마장은 2006년을 전후해서 인조주로를 도입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시기에 인조주로를 도입한 경마장이 이들 경마장 뿐 아니라는 사실이다. 터프웨이(Turfway), 우드바인(Woodbine), 홀리우드(Hollywood), 알링톤파크(Arlington Park) 골든게이트(Goldengate), 프레스크아이슬다운즈(Presque Isle Downs) 등 6개 경마장도 인조주로를 도입했다.
이 6개 경마장도 더트로 돌아갔을까? 인조주로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이들 경마장 사정도 살펴봐야 한다.
터프웨이 경마장은 미국에서 가장 먼저 인조주로를 도입했다. 12월부터 3월까지 추운 겨울에 개장하는 경마장이다. 2005년 9월 더트주로를 폴리트랙 인조주로로 교체했다. 지금까지 13년간 인조주로를 사용하고 있다. 빅3경마장(델마, 킨랜드, 산타아니타)에 비해 경주 및 훈련 사고율은 절반 이하를 기록하고 있으며, 점점 낮아지고 있다.
우드바인은 인조주로 성공의 첫번째 사례다. 2006년 가을 폴리트랙 주로를 설치하면서 사고율은 극적으로 하락했다. 출전경주마 1천 마리당 사고율은 0.9였다. 5년 뒤에는 1.1로 조금 상승했는데, 이를 계기로 현재 사용하는 타페타(Tapeta) 인조주로로 바꾸었고 이후 사고율은 1.0로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경마장으로 평가받는다.
골든게이트은 빈번한 사고로 악명 높은 경마장이었다. 2007년 인조주로 도입을 계기로 사고율이 극적으로 하락해서 지금까지 더트주로는 말할 것 없고, 터프주로보다 더 낮은 사고율을 자랑한다.
프레스크아이슬다운즈는 2007년 미국 최초로 타페타 인조주로를 설치하고 현재까지 사용한다. 대성공이었다. 5년 평균사고율이 미국 최저인 0.82로 떨어졌고 매출과 경주당 출전두수, 경마상금이 급증했다 - 미국은 경마장간 경쟁이 치열하다. 마주와 조교사는 자신에게 유리한 경마장을 찾아 항상 이동한다. - 펜실베니아 말복지 및 안전협회는 2018년 "매년 생산 두수가 급감하고 경마장마다 마방 채우기가 어려워지는 환경에서 프레스크아이슬의 사례는 놀라운 성과"라고 평가했다.
알링톤파크는 2007년 폴리트랙을 설치하고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지만 통계치를 발표하지 않는다. 홀리우드 경마장은 2007년 인조주로를 설치하며 개장했지만 2011년 폐쇄했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나머지 6개 경마장은 모두 성공했는데 메이저 3대 경마장은 왜 인조주로를 포기하고 더트로 돌아갔을까?
산타아니타는 왜 더트로 돌아갔을까?
인조주로가 세계 최초로 선보인 곳은 2001년 영국 링필드(Ling Field) 경마장이었다. 겨울이 경마시즌인데, 설치 후 놀랄 만큼 낮은 사고율을 보였고, 마주와 조교사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미국에서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곳은 킨랜드(Keene Land)였다. 킨랜드는 훈련주로에 폴리트랙을 설치해서 성능을 시험했다. 조교사들의 반응은 좋았다. 킨랜드는 아예 폴리트랙을 제조하는 영국 마틴 콜린스(Martin Collins)사와 합작으로 미국 전역에 설치할 계획을 세웠다.
2006년 봄 킨랜드는 경주로에 폴리트랙을 설치했다. 조교사와 마주의 평가는 좋았다. 경주마 사고율은 극단적으로 떨어졌다. 1,000마리당 0.89까지 떨어졌다. 메이저 경마장 가운데 가장 낮은 사고율이다. 불만은 엉뚱한 곳에서 나왔다. 큰손 경마꾼과 생산자였다. 더트주로에 익숙한 경마꾼, 더트 경마 자료를 기초로 분석하는 큰손 경마꾼은 경주예측이 어렵다고 불평했다. 인조주로에서는 경주 페이스가 느려지고 경주흐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씨수말을 보유한 생산자들은 종부료 하락을 걱정했다. - 예로 더트주로에서는 선행마가 날리는 모래 맞으며 뛰어야 한다. 모래 맞는 걸 싫어하는 말은 경주능력 발휘가 어렵다. 폴리트랙에서는 이런 일이 없다. 추입마와 선입마의 백 퍼센트 능력발휘가 가능하다. 더트에서 연승하던 말도 인조주로에서는 성적이 떨어질 수도 있다.
킨랜드는 이 두 집단의 반발을 이겨내지 못했다. 2014년 킨랜드 CEO는 솔직하게 말했다. "인조주로가 더트에 비해 우수하고 미국의 모든 경마장이 채택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최고의 경주를 유치하기 위해 다시 더트주로로 돌아간다."고 발표했다. 순전히 상업적인 이유로 인조주로를 버린 것이다. 더트 주로로 돌아가자마자 킨랜드 경마장의 사고율은 1.53으로 거의 두배 증가했다.
델마와 산타아니타는 강제로 인조주로를 설치한 경우다. 말복지와 동물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2006년 캘리포니아주 경마위원회는 경주마 안전을 위한 청문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터프웨이 경마장은 폴리트랙 인조주로를 도입한 후 사고율이 90% 감소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2007년까지 인조주로 도입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이 규정은 문제가 많았다. 설치해야 할 인조주로의 표준도 없었고 인조주로에 대한 과학적 검증도 없었다. 무엇보다 18개월 내에 설치하라고 너무나 촉박한 일정으로 요구했다. 주로관리자가 인조주로에 대해 공부하고 시험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당시 인조주로 생산자는 영국 기업 둘, 미국 기업 하나뿐이었다.
이 조치에 따라 델마는 2007년 시급하게 폴리트랙 인조주로를 설치했다. 델마는 몇년간 같은 시기에 인조주로를 설치한 경마장 가운데 가장 높은 사고율을 보였다. 설상가상으로 브리더스컵 위원회는 인조주로에 뛰는 말에게는 브리더스컵 출전자격을 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델마는 캘리포니아 경마위원회의 양해하에 2014년 더트로 복귀했다. 그리고 2017년 브리더스컵은 델마에서 개최되었고, 2021년에도 델마에서 개최된다. 인조주로를 반대했던 생산자들이 주최하는 브리더스컵 경주의 델마와 산타아니타 개최와 두 경마장의 더트 복귀를 사람들은 의심스런 눈길로 쳐다보고 있다.
산타아니타 또한 캘리포니아 경마위원회 결정에 의해 인조주로를 설치했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2008년 폴리머 인조주로를 도입했는데 - 후에 밝혀졌지만 - 사고율 최악인 쿠신(Cushin)제품이었다. 천만 달러를 투자한 주로는 문제가 많았다. 새로 프로라이드(Pro-Ride) 인조주로로 교체했다. 이 또한 실패였다. 이후 인조주로를 포기하고 더트로 복귀했다. 더트로 복귀하자 마자 브리더스컵은 2015년 산타아니타 개최를 결정했고 2020년에도 개최하기로 했다. 더트주로 복귀 후 산타아니타는 사고율 2.35로 미국 최고 기록을 보이다가 마침내 2019년 재앙에 가까운 경주사고가 발생했다. 캘리포니아경마위원회로부터 경마개최중지 결정을 받았다. 날마다 동물보호단체가 경마금지 시위를 벌이면서 산타아니타 경마장은 존폐의 기로에 섰다.
인조주로, 통계가 말한다
미국은 경주마 사고가 가장 많은 나라다. 특히 캘리포니아 다섯개 더트주로에서는 수많은 경주마 사고가 있었다. 2004년부터 2007년 미국 전체 경마장의 더트경마장 평균사고율은 1.91 사고율인데 반해 캘리포니아는 무려 3.09였다. 이 일을 계기로 2009년부터 전국 경주마 사고율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2018년을 기준으로 10년 통계를 분석해보면 사고율은 2.09에서 1.68로 16% 감소했다. 주로특성별로 보면 인조주로가 1.2, 잔디(터프)주로 1.47, 더트(모래)주로 1.97로 나타났다. 모래주로인 더트가 가장 위험한 주로라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준다.
아래 표는 초기 인조주로를 도입한 경마장의 10년간 사고율이다. 경마장에 따라 다르지만, 인조주로는 일관되게 낮은 사고율을 보인다. 특히 인조주로로 복귀한 경마장과의 사고율 차이는 극명하다.

자료:The Thursday Roundup에서 발췌
미국뿐 아니다. 잔디주로가 대세인 영국에서도 울버햄튼 경마장과 뉴캐슬 경마장도 인조주로를 설치했다. 이 두 경마장의 사고는 11,709당 3건이었다. 게다가 한 건은 기수가 실수해서 뒤따르던 말이 추돌한 사고였다. 사고율은 0.2다. 미국 더트 사고율 1.97의 10분의 1이다.
형용모순
경마장의 주로가 앞으로 인조주로로 바뀔 것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도입한지 13년간 더트나 터프와 비교한 통계와 사례가 말해 준다. 인조주로를 능가하는 더트는 없다. 경주마 사고가 일반인의 관심을 끈 이후로 최소한 40년간 경마장의 경영층, 주로유지보수 전문가와 관리자, 주로 컨설턴트는 더 새롭고 안전한 도트주로를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런 더트주로는 존재하지 않고, 앞으로도 없다는 게 일관된 평가다. '안전한 더트주로'는 '작은 거인, 사악한 천사'와 같은 모순어법, 형용모순이다.
인조주로에 대한 경마관계자의 평가도 칭찬일색이다.
"솔직히 인조주로가 더트는 물론 잔디주로 보다 좋다." "인조주로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통계를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더트주로의 사고율은 인조주로의 두배다." 애니멀킹덤 조교사 그레이엄 모션(Graham Motion)과 캐나다에서 올해의 조교사로 선정된 마크 카스(Mark Casse)의 말이다.
"인조주로는 믿을 만하다.", "전체적으로 인조주로가 매우 좋다. 경마장마다 기후는 모두 다르지만, 인조주로는 매우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인조주로를 도입한 것은 최고의 결정이었다. 주로관리에 소요되는 시간도 더트에 비해 적었다." "인조주로의 안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인조주로를 설치한 경마장의 간부, 주로관리자, 수의사가 하는 말이다.
인조주로도 완전하지 않다
인조주로가 개발되고 사용된 기간은 20년이다. 수백년간 사용한 더트나 터프에 비해 짧은 시간이고 안정성을 보이기엔 당연히 무리가 있다. 기후조건은 경마장마다 다르다. 어떤 경마장은 고온다습하고, 어떤 경마장은 춥고 건조하다. 이 모든 기상조건을 만족하는 단일제품은 있을 수 없다. 새 경마장에 설치할 때마다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현재까지 나타난 결과로 보면 낮은 기온이나 고온의 경마장에는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 두바이에서도 만족하고 있고 캐나다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눈과 진눈깨비에는 취약하다고 고백한다.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인조이기에 얼마든지 새로운 실험으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인조주로가 모든 종류의 사고를 없애주는 것도 아니다. 사고의 종류가 다를 뿐 사고는 일어난다. 인조주로도 선천적인 결함이 있는 경주마의 사고를 막을 순 없다.
인조주로의 수명에 대한 의심도 있다. 어떤 경마장에서는 5년만에 문제를 드러내고, 어떤 경마장은 13년간 문제 없이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인조주로가 매력적인 것은 제품이 유아기에 있다는 것이다. 오래된 제품은 기술혁신을 통해 성능을 개선할 여지가 없는 반면, 새로운 기술제품은 성능개선의 여지가 무궁무진하다. 오디오 핵심부품 트랜지스터를 상상하면 된다. 트랜지스터는 미국에서 발명했다. 초기제품은 성능이 엉망이었다. 진공관에 비해 품질이 떨어져 창고에 던져놓았다. 이 트랜지스터 특허를 일본 소니가 샀고, 품질이 중요하지 않는 휴대용 라디오에 사용했다. 트랜지스터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지금 진공관을 사용하는 곳은 없다. 혁신제품은 이런 패턴을 따른다.
인조주로도 그렇다.
멀리 갈 필요없다. 그리스에서 시작한 올림픽 경기는 진흙땅에서 치루었다. 지금은 어떤가? 인조트랙은 육상경기장의 필수조건이다. 인조주로가 아닌 육상경기장은 상상할 수 없다. 심지어 구기종목에서도 인조잔디를 채택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경마장만 예외일 수 있을까?

혁신을 막는 낡은 사고
3대 미국 메이저 경마장이 더트로 복귀한 이유는 경마팬의 기피와 생산자의 반대였다. 일부는 조교사의 반대를 들기도 한다.
조교사 반대는 근거가 희박하다. 누구나 자신이 익숙하게 사용하던 물건을 새로운 제품으로 바꾸려 하면 거부감을 보인다. 새 제품에 대해 공부해야 하고 익숙해질 때까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한다. 이미 사용한 경험이 있는 조교사들의 평가가 이런 거부감을 극복하게 할 것이다. 무엇보다 경마장이 결정하면, 조교사들은 인조주로를 수용할 수 밖에 없다. 조교사의 반대를 이야기하는 건 핑계다.
큰손 경마꾼의 반대는 경마장 매출과 직결되는 문제다.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상황은 바뀌고 있다. 일찍부터 인조주로를 도입한 영국에서는 큰손 경마꾼이 오히려 인조주로를 더 선호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단 인조주로의 경주전개를 이해하기만 하면 경주 예상에 아무 문제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더트주로에서 생기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줄어들고 경주마와 기수의 능력, 컨디션이 그대로 성적에 반영되기 때문에 오히려 큰손에게 유리할 수 있다.
생산자의 반대는 합리적이다. 그들이 현재 보유한 씨수말은 수백억 주고 산 더트주로의 강자들이다. 인조주로의 경주전개와 경주마의 성적은 더트의 그것과 다르다. 고가의 씨수말이 없는 한국에서는 문제되지 않지만, 미국의 경우 종부료 하락과 씨수말 가치하락은 현실적인 문제다.
3대 메이저 경마장도 이들 생산자의 반발을 넘지 못해 더트로 복귀했다.
여기서 경마와 스포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스포츠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능력을 겨루는 활동이다. 신체활동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다. 현대 스포츠의 주류는 뛰어난 팀이나 선수들의 경쟁을 지켜보며 흥분과 감동을 얻는, 보고 즐기는 스포츠다. 핵심은 흥분과 감동, 흥미와 관심이다.
경마는 출전하는 말들이 정해진 주로 또는 거리를 누가 가장 빨리 달리는지 경쟁하는 스포츠로 경주마와 인간의 능력을 겨루는 경기다. 이 또한 보고 즐기는 스포츠이며,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핵심은 흥분과 감동, 흥미와 관심이다. 스포츠는 보다 나은 기록을 추구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현대에서는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현대인이 관심 있는 스포츠는 대부분 기록경기가 아니다. 축구, 농구, 골프가 대표적이다. 육상과 야구는 기록 스포츠지만 이마저도 흥미와 관심을 위한것이다. (경마는 기록 스포츠가 아니다. 경주로는 경마장마다 다르고 기록을 재는 방법도 각기 다르다. 그래서 공식 기록도 없다. 신기록을 따지고, 신기록 세운 말과 마주에게 상금 준다는 발상은 경마나 스포츠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 전에 전제해야 하는 것이 있다. 안전과 공정성이다. 안전은 다른 어떤 조건보다 앞선다. 출전할 때마다 선수가 부상과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면 그건 스포츠가 아니다. 그걸 지켜보는 관중은 팬이 아니라 학살공모자다. 미국과 한국에서는 출주 때마다 경주마가 죽어나가고 기수들이 부상당한다. 이건 스포츠가 아니다. 그래서 미국과 호주, 영국에서 죽음의 경주를 멈추라고 부르짖는 것이다.
공정은 또 다른 전제조건이다. 출전하는 모든 선수에게 자신의 능력을 100 퍼센트 발휘할 수 있도록 공정한 경쟁조건을 줘야 한다. 투기종목에서 체급별로 경쟁하고, 승마를 제외한 모든 종목에서 남녀가 구분해서 경쟁하는 이유다. 공정하지 않는 경기는 팬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기 어렵다. 더트 경마장은 앞서 가는 말이 던지는 모래 덩어리를 뒤따르는 말이 맞으며 가야 - 킥백 - 한다. 선행마에 절대 유리하고 모래에 민감한 말은 능력발휘가 어려운 조건이다. 추입마나 선입마는 불공정을 감수해야 한다. 게이트가 열리는 순간 선행마가 결정되고 그 순서대로 결승선에 들어오는 경주에 흥미와 감동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인조주로는 스포츠의 전제조건인 말과 기수의 안전을 돕고, 경주의 공정성을 높인다. 선행마뿐 아니라 추입마와 선입마에게도 공정한 능력발휘기회를 부여한다. 경주를 지켜보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낼 가능성이 있다.
인조주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한국의 기수 재해율은 72.7%이고, 관리사 산재율은 전국 1위다. 영국에서 시작한 동물보호단체의 경마반대는 호주와 미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한국의 동물보호단체, 동물권리단체의 경마 감시가 시작됐다. 이대로라면 경마에 희망이 없다.
2019년 산타아니타에서 있었던 대참사이후, 미국에서는 경마를 중단하라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 더러브렛인연합에서는 경마에서 무엇보다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며 인조주로를 도입하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인조주로 도입이 동물보호단체의 불만을 잠재우긴 어렵지만, 하나의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도 경주마와 기수의 안전, 공정한 능력발휘 기회 부여를 통한 흥미와 관심 제고 측면에서 인조주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