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보고 왔다.
예매해.
지금 당장!
가서 봐. 지금!
이게 가장 정확한 영화평이다.
여자처럼 말타라(Ride Like a Girl). 여자 기수만큼만 타 보라는 조롱으로도 들린다.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틈이 생기지.
그 틈을 잡아서 앞으로 나가야돼.
생긴 것보다 더 빨리 닫혀버리니까."
이 영화의 처음과 끝, 상영중에 잊을 만하면 나오는 대사다.
이야기는 정말 단순하다. 여자 기수가 차별을 딛고 고생고생해서 세계 최고의 경주 멜번컵 우승 기수가 된다는 이야기다. 반전도 없고 극적인 사건도 없다. 그래서 일부 관객은 지루하고 재미없었다고 평가한다. 말과 경마를 모르는 사람에겐 이런 평가가 타당하다.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호주 영화다. 극적인 요소를 군데군데 배치하고 조미료와 인공색소를 덕지덕지 바른 헐리우드 영화와 다르다. 한국영화 흥행공식인 '전반 웃음'과 '후반 비장함'도 없다. 억지 웃음과 감동도 없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 멜번컵 여성기수 최초 우승자 미쉘 페인이 겪은 일을 꾸밈없이 잔잔하게 풀어냈다. 여자 감독이 재료 그대로의 맛을 살렸다. 영화는 담백하고 깔끔하다.
실제 트레이너로 일하는 미쉘 페인의 오빠가 출연했다. 다운증후군을 앓지만, 해맑고 낙천적인 사람이다. 말에게 묻고 말이 대답한 내용을 기수와 조교사에게 전하는 모습이 배우보다 더 자연스럽다. 경주 장면, 훈련 모습은 미쉘 페인이 직접 연기했다. 드리머나 시비스킷에서 볼 수 있는 어색함이 없다.
감독은 촬영과정에서 단 한마리 말도 희생시키지 않았다. 실제로 말 영화 촬영에는 많은 말이 희생된다. 최대 학살영화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워호스'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 영화는 평가받아야 한다.

주인공 미쉘 페인은 공기가 말로 가득한 나라, 생활이 말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성당과 학교에서, 수녀와 교사가 경마 배당률을 말하고, 대상경주는 온 마을 사람이 둘러앉아 시청한다. 미쉘은 목장주겸 트레이너인 아버지와 기수인 어머니 사이에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서너살 때 어머니는 경주 사고로 죽었고, 어린 10남매를 아버지가 키웠다. 10남매중 8남매가 기수로 데뷔한다. 언니 한명이 또 경주 사고로 죽는다. 미쉘만은 지키고 싶었던 아버지는 미쉘을 곁에 두고 싶어하지만 최고의 기수를 꿈꾸는 미쉘은 더 큰 세상을 찾아 떠난다.
참 슬픈 영화다. 경마장 조교사 대기실에서 조교사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훈련기수로라도 태워달라고 청한다.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새벽마다 나가서 기다리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다. 여자기수여서다. 남자 기수들이 조교사 대기실에 들어가고, 조교사와 기수가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유리창 너머로 봐야 한다. 나는 조교사 대기실 밖에서 기다리는 미쉘기수에게서 박진희, 이아나, 안효리, 박종현 기수를 봤다.
악인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게 이 영화의 특징이다. 모두들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한다. 나쁜 사람 없다. 그 사람들 틈에서 미쉘은 힘들고 슬프다. 아무도 대놓고 여자기수라 차별하지 않는다.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차별이 이루어지고 미쉘을 애처롭고 슬프게 만든다.
잔디주로에서도 기수가 죽어나간다. 가족 모두 울지 않는다.
두개골이 부서지고, 무릎뼈가 나가고 등뼈가 깨진다. 전신마비상태에서 휄체어에 의지하면서 미쉘은 의사에게 묻는다.
"언제 말을 탈 수 있나요?"
멜번컵 우승 화려한 축하행사가 끝난뒤 미쉘은 기수대기실에서 감격을 주체하지 못하고 환호한다. 미쉘은 가장 행복한 모습이지만, 관객은 이 장면이 가장 슬프다. 여자기수 대기실이고 함께 기뻐하는 기수가 없다. 미쉘은 혼자다.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중환자실에 누웠다. 도움없이 살 수 없는 다운증후군 오빠가 미쉘에게 묻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지?'
'나랑 살면 되지.'
' 미쉘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
기수는 내일이 없는 삶을 산다. 이후 다운증후군 오빠의 맑은 웃음이 슬프게 한다.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틈이 생기지. 그 틈을 잡아서 앞으로 나가야돼. 생긴 것보다 더 빨리 닫혀버리니까."
미쉘은 '프린스오브펜젠스'를 한번 보고는 명마임을 알았다. 이 말을 포기하지 않았다. 간절하게 조교사에게 애원해서 자기 말로 만들었다. '틈을 잡아 앞으로 나갔다'. 멜번컵을 앞두고 마주들은 여자기수가 우승한 적이 없음을 들어 다른 기수를 태우려 했다. 프린스오브펜젠스는 단승식 100배인 말이었다. 주저하지 않고 마주에게 대들어 승낙을 받아냈다. '틈을 잡아 앞으로 나갔다'. 멜번컵 경주는 26마리가 뛴다. 선행마가 아니면 거의 모든 말이 중간에서 허우적 거리다 끝난다. 단 한번 앞선말들 사이로 틈이 생기고, 미쉘은 그 틈을 잡아 앞으로 나갔다.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틈이 생기지. 그 틈을 잡아서 앞으로 나가야돼. 생긴 것보다 더 빨리 닫혀버리니까."
한국에서 말 영화가 그렇다. 잠시 상영하곤 사라진다. 미국에서, 영국에서 흥행 1위한 영화도 예외없다. 틈을 잡아서 관람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그 틈은 닫힌다. 오늘쯤 극장에서 이 영화 내렸겠다.
우리 사는 모습도 그렇다. 살면서 끈질기게 기다리면 틈이 열린다. 취업이 그렇고, 결혼이 그렇고, 사업기회가 그렇다. 망설이면 그 틈은 순식간에 닫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