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 보이고 고상해 보이는 말이 있다. 담론, 진솔, 지점, 생명, 교감 이런 단어다. 글 읽다 이런 단어 만나면 그 글은던져버린다. 천박한 인간이 고상한 척하는 게 보기 불편해서다. 읽어봤자 건질 거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주제라고 하면 될 걸 담론, 여기에서 라고 쓰면 될 걸 지점, 솔직을 진솔이라 쓴다. 교감은 더 황당하다. 아예 말이 되지 않은 단어다. 게다가 승마, 경마 글에서 자주 만나는 단어다.

승마 소개하는 글에는 어김없이 '생명 가진 말과 교감하며'란 말이 등장한다. 경마에서도 기수와 조교사는 말과의 교감을 강조한다. 교감.
사전에는 '서로 접촉하여 따라 움직임'이라 설명한다. 대화보다 더 깊은 교류로, 느낌을 주고 받는 걸 말한다. 마음으로 통하는 느낌,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이나 생각을 느낀다는 말이다.
교감이란 단어는 주로 말 못하는 대상을 상대로 쓴다. 자연과 교감하며, 동물과 교감하며.... 왜 교감은 말 못하는 대상과 할까? 교감을 제대로 했는지는 어떻게 아나?
영화 바람의 전설 봤는지 모르겠다. 이성재 박솔미가 출연한 스포츠댄스 영화다. 춤이 주는 원초적 쾌감과 교감의 황홀함을 보여준다. 왜 말 통하는 인간과는 교감하지 않을까?
미스사이공이란 뮤지컬이 있다. 오페라의 유령, 캣츠, 레미제라블과 함께 4대 뮤지컬로 꼽는다. 베트남 전쟁 중에 만난 미군과 베트남 여인의 슬픈 사랑이야기다. 여주인공 킴 같은 여인을 워 브라이드(War Bride), 전쟁신부라 부른다. 전쟁 겪는 나라는 문자 그대로 지옥이다. 평화를 위해 전쟁한다는 건, 처녀막을 지키기 위해 섹스한다는 말과 같다. 날마다 사람이 죽어 가고, 굶주리고, 강간의 위협에 시달린다. 참전한 외국 군인과 결혼해서 전쟁지역을 떠나는 게 전쟁지역 소녀의 꿈이다. 2차 세계대전 떄 독일 여인이 가장 많았고 호주, 한국, 베트남 전쟁 동안 전쟁신부가 대거 미국에 입국했다. 전쟁신부와 군인남편은 말이 통하지 않으니 서로 교감할 수 밖에 없다. 교감이 그렇게 좋고 고상한 거라면 말 배우지 않고 그냥 살면 된다. 연구결과 보면 그렇지 않다. 남편과 신부 모두 답답해 한다. 곧바로 서로의 말을 배우기 시작한다.
조교사나 승마장의 교관도 비슷한 심정이다.
한결같이 시키는대로 잘 따라주던 말이 어느날 거짓말처럼 거부한다. 기쁜 마음으로 주인 따르던 말이 움직이려 하지 않고 억지로 어기적 어기적 걷는다. 박차로 찌르고 채찍으로 독려하면 억지로 움직인다. 비싼 돈 들여 수의사 불러 여기저기 체크해봐도 정상이다. 수의사가 돌팔인지, 이놈이 꾀병인지 궁금하다. 제발 말 좀 했으면 좋겠다.
나갈 때마다 우승하는, 적수가 없는 말인데 어느날 훈련을 거부한다. 병원 데려가도 이상 없단다. 말에 대해서는 좀 안다는 사람 모두 불러도 답을 내놓지 못한다. 팔짝 뛸 노릇이다.
마방의 꿈나무, 싹수가 파릇파릇한 망아지, 5승은 해줄 것 같은 놈이 훈련 때는 게이트 쑥쑥 들어가다가 경주 때는 죽어도 안 들어간다. 심판에게 징계 받은게 한두 번 아니다. 터프윈의 연승 기록 깰 놈이 데뷔전도 못하게 생겼다. 원하는 거 다해 줄테니 제발 한마디만 해줬으면 좋겠다.
말이 말을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몇년 지나지 않아 말 배우는 전쟁신부처럼 말을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불과 수십년전만 해도 사람들은 인간만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떠들었다. 언어는 인간과 동물을 구분짓는 중요한 기준이고, 인간이 문명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은 동물을 맘대로 다루어도 된다는 도덕적 근거를 제공했다.
과학자들은 동물들도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대양에서 고래는 음파로 의사소통하고, 말은 몸짓으로, 새는 울음소리로 말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동물도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가졌고, 고통과 슬픔, 사랑을 느낀다는 걸 알게 됐다. 칼로리나 음식보다 사랑과 애착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도 알았다.
동물과 사람의 대화는 불가능할까? 많은 사람이 도전했다.
네바다대학교의 앨런 가드너 박사는 원숭이에게 청각장애자들이 사용하는 수화를 가르쳤다. '워쇼'라는 원숭이는 청각장애인과 수화로 대화할 수준이 되었다. 4년만에 160개 단어를 이해했다. 음식 달라는 말을 할 수 있었고 어떤 물체를 묘사하거나 개념까지 표현했다. 자신과 종이 다른 원숭이를 부를 때 워쇼는 원숭이라 불렀다. 자신을 괴롭히는 붉은털 원숭이는 '더러운 원숭이'라 불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나 상태, 대상에 대해서는 더럽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학의 프리맥 박사는 다양한 모양과 색깔을 가진 플라스틱을 사용해서 원숭이에게 말을 가르쳤다. 원숭이는 플라스틱 조각을 사용해서 능숙하게 말을 했다. 130개가 넘는 단어를 알고, 간단한 문장을 만들 수도 있었다.
가장 혁신적인 사례는 고릴라 코코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중에 코코는 수화로 단어 1000여개를 쓸 수 있었고 2000여개의 영어 단어를 이해했다고 한다. 수화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인터넷에 접속한 사람들과 '나는 음료를 좋아한다(I like drinks)'와 같은 영어 문장으로 대화하기도 했다.
원숭이나 코끼리처럼 경마장 말이 말을 배우면 무슨 이야길 할까?
조교사님, 제 옆방에 실버 있잖아요. 걔 잠버릇이 안 좋거든요. 이 갈고, 문을 걷어차요. 자다가 내가 몇 번씩 깨는지 몰라요. 저 이번 경주 열심히 뛸 테니까 방 좀 바꿔주면 안되요?
제가 우승하면 주인님, 조교사님 상금 받죠? 그 돈으로 저 수박 한통 사주면 안되요?
저기 원더볼트 거세했잖아요? 사람을 그렇게 강제로 거세시키면 큰 일 나죠? 감옥 가죠?
경주 때 기수들은 모래 튀는 거 막으려고 플라스틱 캡 쓰죠? 우리는 더 많이 맞거든요? 우리도 플라스틱 캡 쓰면 안되요?
저 12개월 여기 있었어요. 마굿간, 원형마장, 경주로만 왔다갔다 했어요. 한달, 아니 보름, 아니 딱 일주일만 초지에 갔다 오면 안되요?
그랑프리 우승했던 밸리브리 형 있잖아요? 걔 지금 어디 있어요?
저 끝에 백록정 있잖아요. 아파요. 몸이 무겁고 몸살 난 것 같대요. 관리사님이 안 움직인다고 채찍으로 때리고 욕하던데, 이야기 좀 해줘요.
6군에서 10번 뛰었는데 순위에도 못 드는 강타 있잖아요. 잘 뛰진 못하지만 정말 착한 애에요. 우리가 다 좋아해요. 성격도 좋아요. 걔 성적 안난다고 보내지 마세요.
잘 뛰던 머니카, 경주끝나자 마자 휴양목장 보냈죠? 걔 조교사님을 존경하고 좋아해서 정말 열심히, 몸이 부서져라 뛰는 말인데.... 안됐어요.
승마장 말은 뭐라 할까?
사장님, 올드보이 영화 있죠. 거기 배우가 15년 동안 군만두만 먹잖아요? 우리는 평생 건초에 미국 사료공장에서 만든 딱딱한 사료만 먹어요. 훈련 열심히 할테니까 풀 있는 초지에서 며칠만 있으면 안되요?
사장님, 이번 주 월요일 빼고 화수목금토 매일 6 시간씩 손님 태웠어요. 너무 힘들어요. 내일은 좀 줄여주면 안되요?
교관님, 손님 오면 열심히 일해야 하는 건 알아요. 더러브렛은 하중을 잘 못 견디잖아요. 80킬로 넘는 사람이 타면 등에 무리가 와요. 좀 도와주세요.
교관님, 아침에 탄 청바지 입은 사람 있잖아요. 대놓고 고삐를 당기는 통에 제 입이 헐었어요. 말 좀 해주세요.
전쟁 중에 외국 군인과 결혼한 전쟁신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남편 나라로 돌아간 부부는 잘 살았을까? 알콩달콩 잘 살았을까? 연구결과 그렇지 못했다. 전쟁신부가 남편나라 말을 배우는 시점부터 갈등이 생긴다고 연구자들은 말한다. 말하기 시작하면서 착하고 순종적이라 생각했던 아내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아내는 쌓아왔던 불만을 조금씩 터뜨리기 시작한다. 갈등은 점점 커지고 싸움으로 발전한다. 대부분 이혼으로 끝난다.
전쟁신부는 말을 못할 때만 사랑스럽다. 교감한다고 착각할 때만 다정하다. 자연이 말을 못하니, 말이 말을 못하니 교감한다고 착각한다.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말과 교감하는 승마가 사람과 사람이 교감하는 스포츠댄스보다 좋은 이유다. 말도 자기 느낌을 말하는 온전한 교감,
니가 감당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