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일요일 서울경마장의 2023년 상반기를 마감하면서 경마창출자들의 기념행사가 있었다. 28조 최상식 조교사의 은퇴식에 공교롭게도 500승 달성 축하 시상식을 같은 날 겸하게 되었다. 겸사겸사 20조 배대선 조교사의 은퇴식에 더해서 김귀배 기수의 정년 퇴임과 함완식 기수의 기수 은퇴와 조교사 개업까지 일괄적인 행사가 해피빌 1층 출전마 마주실에서 있었다. 조교사로서 정년을 다하고 은퇴식을 하는 것은 세상 모든 직장인이 별 사고 없이 퇴직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정년이 만 63세 되는 해가 되면 때 맞춰 매년 한두 명은 경마장을 떠나게 된다.
기수는 그와 달리 정년이 3년 짧아 만 60세 되면 경마장을 떠나게 된다. 한국경마의 역사를 100년 운운해도 아직 그런 기수는 없었다. 대개의 기수는 스포츠 선수들처럼 3, 40 대가 되면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조교사 시험에 응시해 조교사 자격증을 얻고, 마방을 받을 때쯤에 맞춰 기수복을 벗고 조교사로 직업을 전환한다. 다만 기수 시절에 별 사고 없을 때 가능하지만 경마 부정사고에 연루돼 중간에 경마장을 떠난 기수들의 숫자는 현역 기수들 숫자보다 더 많았다. 그만큼 기수는 곱게 경마장을 떠나기가 쉽지 않은 직업 군 중 하나 다. 체력을 극복하고, 유혹을 극복하고 곱게 정년 퇴임을 한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 꿈만 같은 일을 김귀배 기수가 한국경마에서 해냈다.
한국경마가 101년의 역사를 썼어도 기수가 정년을 다하도록 경주로를 달렸다는 역사는 없었다. 한국경마의 출발을 1922년 5월 최초의 경마법인으로 간주한 사단법인 조선 경마구락부가 주관한 첫 경마 시행에 초점을 맞춘다면 엄밀히 101년만 그런 기수의 정년 퇴임을 처음으로 보게 된 셈이다.
박태종 기수가 1000승을, 2000승을, 2200승을 새역사를 쓰듯 김귀배 기수는 한국경마 101년만 처음 정년을 다하고 은퇴식을 치르며 경마장을 걸어나가는 최초의 기수가 되었다. 값지고 위대한 그리고 빛나는 은퇴식이다. 그의 가장 빛나는 말몰이는 1986년 12월 14일 전설의 명마 포경선을 몰고 제5회 그랑프리에서 우승 트로피를 높이 치켜 들던 대목을 꼽겠다. 1979년 4월 방년 17세의 나이로 기수양성학교를 김점오 김문갑 윤치운 김성현 박윤철 김광중 박명옥 임종인 박용태 이범희 장광식 김종권 조도길과 함께 수료했다. 그해 기수로 데뷔해 올해로 44년째 4568전을 기승 했다. 우승을 328개, 준우승을 326개, 3착을 386개를 챙겨 통산 승률 7.2 %를 지켜왔다.
일본의 경우에는 난칸지방경마에서 생애 최다승 7,151승을 올렸던 가와사키경마장 소속의 ’사사끼 다께미‘기수가 만64세에 퇴역했다. 아직도 그를 기리는 특별경주가 매년 가와사키경마장에서 열린다. 그의 대기록을 이미 4년 전 2019년에 깬 오이경마장의 ‘마도바 후미요’기수는 1973년에 데뷔해 50년째 기승을 한다. 67세의 노익장이지만 젊은 기수 못지않게 펄펄 날면서 43,284전을 달려 현재 7,415승을 거두며 지방 경마 흥행에 앞장에 서고 있다.
일본 경마 환경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실정이지만 김귀배 기수도 ‘마도바’ 기수처럼 좋은 환경에서 달렸다면 젊은 날 명마 포경선과 그랑프리를 석권했던 시절을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성적이 좋지 못했던 이유를 굳이 달자면 인기 기수에 편중했던 기승 기회 때문일 수 있겠다. 그는 늘 부진마와 악벽마의 고삐를 잡고 경주로에서 고전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을 그는 극복했다. 그도 호흡이 잘 맞는 우수한 경주마와는 펄펄 날 수 있었다.
누구도 가지 못한 길을 44년 간 뚜벅뚜벅 걸어온 그가 마지막 경주에 기승 하면서 ‘아쉽다...’ 는 짧은 한마디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그의 은퇴에 임하여 문세영 기수는 ‘더비에 우승한 기수를 보면 엄청나게 대단하게 보였고, 그랑프리 우승한 기수를 보면 너무 대단하게 보여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야겠다고 생각했지만 20년쯤 기수 생활을 하다 보니까 대단한 기록을 세운 사람이 대단한 게 아니고 가장 오래된 분이 가장 대단한 분이고, 가장 존경을 받아야 할 분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토로한다.
김귀배 기수가 고참 기수로서 기수의 길을 고집하며 달려온 덕분일까. 서울경마장에는 62년생 김귀배 기수 외에도 65년생 박태종, 67년생 김옥성, 신형철, 등 환갑을 바라보는 노장 기수들이 아직 활발하게 현역으로 당당하게 달린다. 한국경마가 경마의 역사를 휴먼스토리로 써가려면 일본처럼 기수와 조교사의 면허 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마사회법을 손질할 때가 되었다. 경마창출에 평생을 바쳐 온 이들에게 좀 더 시간을 주는 것도 한국경마가 좀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이 되지 않을까.
101년의 한국경마사 최초로 쓴 유일한 김귀배 기수 정년 퇴임을 딸랑 은퇴식 하나로 잠깐 대신하지 말자. 매년 6월 25일 그가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경주로에 선 날을 기념하는 특별경주를 제정,시행한다면 쓸데없이 남발하는 교류기념 특별경주보다는 팬들에게는, 그리고 경마창출자들 모두에게 뜻깊은 특별경주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