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마가 고집하는 단거리 경주에 팬들은 재미를 잃어간다. 더러브렛 경주를 펼치는 두개의 경마장 모두 하루 종일 단거리 경주가 펼쳐지는 작금의 현실에 이의를 제기하는 글들을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올해도 국산 신마 두 살배기가 553마리가 입사해 184마리를 제외하곤 실전에 투입됐고, 외산마는 93마리가 도입돼 19마리의 미검마를 빼고 경주에 뛰고 있다. 개인 마주제 전환을 기점으로 한국경마는 외산마에 의존했던 것에서의 탈피를 외치며 국산마 생산장려책을 내걸고 국산마 생산에 발판을 만든지 30여년 만에 한국경마는 국산마 시대로의 전환을 꾀했다. 매년 도태되는 경주마에 걸맞게 국산 신마들이 수급이 정상적으로 되면서 한해 계획된 경주를 펼칠 수 있는 발전을 보였다. 그런데 왜 한국경마는 더 나갈 생각을 못하고 당장 편하다고 단거리 경주에 집착할까.
물론 경주 거리마다의 묘미는 있겠지만 경주에는 격이 있다. 경주마들도 경주 거리마다에 적응지수가 달라 원천적으로 단거, 중거리, 장거리마로 분류한다. 번번이 일본 경마를 샘플링 하는 것이 본인도 싫은데 일본 중앙경마와 지방경마가 차이 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하루에 펼쳐지는 경주의 분포다. 팬들의 관심이 저하되는 지방경마의 경우 내리 1400m 거리만 뛰거나 간혹 가뭄에 콩 나듯이 후반 한두 개 경주에 1600m 거리 경주를 펼친다. 중앙경마는 그렇지 않다. 종일 다양한 거리의 경주를 펼치면서 거리마다의 적응된 최적의 경주마들이 격돌한다. 팬들은 지루할 틈도 없이 열광하며 즐기게 된다. 물론 자원의 풍요에서 올 수 있는 결과겠지만 궁극적으로 경마는 팬들이 존재하지 않으면 소멸하게 된다.
경마는 다양한 거리에서 다양한 경주마가 달리면서 각본 없이 찍는 다시없는 유일한 한편의 드라마라 생명력을 갖게 된다. 그에 더해 다양한 베팅 방식으로 팬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어 오랜 역사를 갖게 되었다. 이제 올해도 달 반 남짓 남기고 먼 곳으로 사라져간다. 11월의 가장 큰 대상경주인 제19회 대통령배 대상경주가 내일 일요일로 다가왔다. 지루했던 단거리 경주에서 오랜만에 벗어나 최고의 국산마들이 모여 장거리경주에서 챔피언을 가린다. 2004년 창설된 후 부산경마장이 가세한 2010년 제7회부터 대통령배의 우승 트로피는 그야말로 부산경마장의 전유물이 되었다. 연조는 짧았어도 국산 명마의 배출은 서울보다 부산경마장에서 더 탁월했던 모양새를 보였었다. 그러던 것에 마침내 제동을 건 것이 최근 2년 전 이번 대회에 노익장으로 다시 도전하는 16심장의고동이었다. 2021년 10년 만 제17회에 서울, 부산 오픈으로 펼쳐진 대통령배에서 처음으로 서울경마장이 우승 트로피를 가져온 것이다.
뒤를 이어 작년 제18회에서 라온시리즈의 13라온퍼스트가 암말임에도 불구하고 창설 이래 또한 처음으로 우승을 챙기는 기염을 토했다. 창설 당시만 해도 대통령배라는 것은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시절로 경마는 도박으로 사회적 지탄이 심했던 시절이었다. 일주일이 멀다하고 경마부정에 연루된 사건이 사회면을 장식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감하게 혁신적으로 부활했지만 19회가 계속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시상식에 참석하려고 경마장을 찾은 대통령은 없었다. 외국 순방을 좋아하는 윤대통령이 귀국해서 시상식에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도 대통령배 창설 이래 처음 있는 일이 되겠다. 상금도 ‘코리안 더비’와 ‘그랑프리’에 맞먹는 10억 원이다. 이 대회에 우승을 하면 올해 최고의 국산마로 등극할 수 있는 대상경주이다. 결국 몇 마리 안 되는 외산마의 빈곤 속에 최고의 국산마로의 등극은 한국경마의 챔피언이나 마찬가지이겠다.
서울경장에서 펼쳐지는 연말의 ‘그랑프리’축제를 앞둔 사전 축제인 만큼 많은 팬들이 경마장을 찾겠다. 과연 이번 대회를 연2년 제패했던 서울경마장이 3연패에 성공하느냐, 다시 부산경마장으로 우승트로피를 반납해야 하느냐의 기로에 선다. 아마도 후자 쪽에 방향의 추가 기울어지는 듯싶다. 올 한해 빼어난 활약을 하며 정상의 자리다툼을 해온 기대주들이 몽땅 부산경마장에서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들의 활약에 더 많은 기대를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그랑프리’를 석권하고 올해는 단 한 차레 일반경주에 출전 몽 땅 대상경주만을 출전했던 15위너스맨(서승운)과 명마의 배출이 인정돼 정년 연장의 혜택을 받은 김영관 조교사의 또하나의 작품인 올해 최고의 여걸로 부상하여 최고의 마생을 구가하며 암수불문 대적해 온 신예 11즐거운여정(다실바)에게 모든 경마예상가들이 후한 점수를 주고 있을 뿐 아니라 올해 경마장을 찾았던 팬들 역시 그들의 대결을 보려고 서울경마장을 다시 찾게 된다. 작년 18회 대회에서 최초의 암수의 대결에서 13라온퍼스트(최범현)가 우승을 거머쥐었듯이 올해도 암수의 대결에 관심이 집중되겠다. 물론 아직 저력을 다 발휘하지 않은 김헤선 기수와 화려한 성장기를 보내고 있는 ‘트리플 크라운’ 2관마인 2글로벌히트(김헤선)까지 부산경마장의 출전마이니 당연히 제19회 대통령배의 향방이 부산경마장 쪽으로 돌려질 수밖에 없겠다.
단거리 경주에 신물이 난 팬들이 오랜만에 박빙의 장거리 경주를 맛볼 수 있겠다. 일요일 제8경주 2000m 장거리에 서울 8마리, 부산 8마리 동 수의 출전마가 게이트를 꽉 채우고 출발하니 경주로가 달구어지겠다. 복병으로 주목되는 부산경마장의 8스피드영(이효식)이나 3갤럭시로드(이성재)의 기습도 매섭겠다. 어느 말에게 승운이 따르느냐 가 경마에서는 빼 놓을 수 없는 변수로 늘 작용해 왔지만 한국경마도 발전해 온 만큼 대상경주에서의 대이변은 전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다만 베팅 방식을 활용해 짭짤한 배당을 노려보는 지혜도 필요하겠다.
한국마사회는 부디 2024년 경주계획을 세울 때 실현 가능한 조건으로 장거리 경주를 많이 편성해 더 많은 팬들이 한국경마를 떠나지 않도록 노력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