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상반기를 마감하는 6월 김귀배 기수의 정년 퇴임식 행사가 서울경마장 해피빌 1층 마주실에서 있었다. 조교사가 정년을 다하고 은퇴식을 하는 것은 세상 모든 직장인이 별 사고 없이 퇴직하는 것과 다름이 없어 만63세가 되는 해에 때맞춰 매년 한두 명씩 경마장을 떠난다. 기수는 그와 달리 정년이 3년 짧아 만60세가 되면 경마장을 떠난다. 한국경마의 역사를 100년 운운해도 2023년까지는 그런 기수가 없었다. 대개의 기수는 스포츠선수들처럼 3, 40대가 되면 체력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조교사 시험에 응시해 조교사 자격증을 얻고, 마방을 받을 때쯤에 맞춰 기수복을 벗고 조교사의 길을 걷는다. 기수 시절에 별 사고가 없었을 때 가능하지만 경마부정에 연루되면 곧바로 경마장을 떠난다. 현역 기수들의 숫자보다 그렇게 떠난 기수들의 숫자가 더 많았다.
그만큼 기수는 곱게 경마장을 떠나기가 쉽지 않은 직업군 중 하나다. 체력을 극복하고, 유혹을 극복하고 곱게 정년 퇴임을 한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꿈만 같은 일을 한국경마에서 김귀배 기수가 처음으로 해냈다. 한국경마의 창설을 1922년 5월 최초의 경마법인으로 간주한 사단법인 조선 경마구락부 첫 경마 시행에 초점을 맞추면 엄밀히 101년만에 김귀배 기수의 정년 퇴임은 큰 의미를 둘 수 있겠다.
박태종 기수가 올 연말에 김귀배 기수의 뒤를 이어 두 번째 기수로서 정년 퇴임을 갖게 된다. 한국경마의 모든 새로운 역사를 써온 박태종 기수가 정년 퇴임을 한 김귀배 기수의 다음으로 두 번째가 된다. 박태종 기수가 그간 한국경마 1000승을, 2000승을, 2200승을 경주를 달릴 때마다 우승을 거둘 때마다 새역사를 썼지만 말이다.
일본지방경마 ‘가와사키경마장’ 소속 ‘사사키 다께미’ 기수는 60세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그는 올해 박태종 기수와 같은 나이에 ‘난칸’ 네 개 경마장을 순회하면서 7,251승의 대기록을 세우고 2001에 은퇴하였다. 벌써 23년이 지났다. 영원히 깨질 것 같지 않았던 그의 기록을 이번 3월 31일 은퇴를 하는 같은 일본지방경마 ‘오이경마장’소속 ‘마도바 후미오’기수가 43,497전을 뛰며 7,424승을 올리면서 깼다. ‘사사키 다께미’기수가 44년 동안, 한 마디로 한평생을 말만 타고 주로를 달렸다. 오랫동안 달렸다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를 줄 수 없다. 다만 그의 최다승 이후에 일본경마에서 누구도 진기록을 다시 쓸 수 없었다는 것도 큰 의미였지만 깨졌다.
‘마도바 후미오’기수는 ‘사사키 다케미’기수와 같은 나이 60세에 7,024승을 올렸었으며 그보다 더 길게, 더 오래 68세까지 기승하면서 비로소 그 기록마저 깼다. 마침 일본지방경마 ‘을아와 경마장’ 소속 ‘우찌다 토시오“기수도 지난 3월 7일 올해 64세로 25,995전을 치르며 3,611승을 올리고 은퇴식을 마쳤다. 그는 부산경마장에서 핑크색 유니폼을 입고 한때 많은 우리 팬들의 사랑을 받은 적이 있었다.
올해 한국경마에 박태종 기수도 예측컨데 아마도 연말까지는 2,260승까지는 올리고 떠나지 않을까?
새해를 맞은 지 엊그제 같은 데 3월도 한 주를 남기고 봄은 색깔이 짙어졌다. 벚꽃의 명소 서울경마장도 4월 첫 주 토요일(4/5)과 둘째 주 토요일(4/12)은 벚꽃축제 봄 야간경마가 시작된다. 매해 좋은 출발을 보이는 기수가 부상 없이, 기승 정지 없이 꾸준히 기승해 연말에 이르면 최고 100승을 거둘 수 있다. 박태종, 문세영 기수만이 거둘 수 있었던 좋은 성적이다. 연말까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으려면 조교사는 소속 경주마의 진검 승부를 위해 최고의 기수에게 고삐를 맡긴다. 경주마의 상태가 좋아서 맹훈련을 소화한 데다 해 볼 만 한 적수를 만난 경주라면 한 치의 실수도 없는 말몰이를 해 줄 기수를 찾는 것은 당연하다. 우승을 목전에 두고 말몰이에 실패해 우승을 놓친다면 다시 한 달은 담금질을 해야 하고 그런 좋은 기회가 다시 온다는 보장이 없기에 어떻게든 성과를 낼 기수를 찾는 것은 경마장의 생태다.
1987년 13기 기수로 출발한 박태종은 한국경마에서 국민기수로 칭송을 받으며 달려 온지 38년째다. 동기생으로 김옥성 기수가 유일하게 함께 경주로를 떠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덜 외롭겠다. 한국경마에서 그처럼 팬들의 많은 박수를 받았으나 그처럼 많은 야유를 받은 기수도 없겠다. 옛날은 요즘처럼 팬들의 자질이 성숙하지 못한 터라 입상에 실패하면 예시장에서 온갖 야유와 힐난을 보냈었다. 그가 혼자 모든 것을 받으며 경주마를 끌고 나갔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두 기수를 제외한 동기생들은 이미 서울, 부산경마장 조교사로 전환해 중견 자리를 넘어 베테랑으로 불린다. 심지어 훨씬 후배 기수들도 조교사로써 박태종 기수에게 경주마 말몰이를 맡기는 실태이니 정년까지 최고의 기수로 남기란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겠다.
기수 전성기 시절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전 김효섭 조교사와 부산의 명문마방이었던 전 김재섭 조교사 등 1987년 4월에 데뷔했던 13기들은 한국경마의 기수 부문이나 조교사 부문에서 한국경마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왔다. 2023년 전까지만 해도 5기 출신의 김귀배 기수가 최고참 기수로 활약하며 후배 기수들의 선도했었지만 모든 후배 기수들의 꿈은 역시 박태종 기수를 향하지 않았을까.
경마문화가 제대로 꽃피려면 베팅보다는 좋아하는 기수에게 박수와 함성을 보내는 풍토가 만들어질 때다. 박태종 기수가 은퇴를 앞둔 요즘 전성기의 찬란했던 성적을 내지는 못해도 오직 외길로 한평생을 최고의 국민기수로 달려왔다는 역사를 우리는 그가 떠나는 날까지 기억해야 한다. 변함없는 노장의 투혼을 그날까지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