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크리테리엇, 시비스킷, 맨오워를 아시는지 모르겠다.
미국인들이 이들과 같은 명마로 꼽는 경주마, 이 말들보다 더 많은 동상을 세워 추모하는 국산 경주마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겠다. 켄터키 말 공원, 플로리다주 세계승마협회, 버지니아주 국립해병대박물관, 캘리포니아주 펜들턴 기지, 국립카우걸박물관, 명예의 전당, 베링턴힐스 농장, 한국의 연천군 역사공원, 제주경마공원….
한국 이름 아침해, 미국 이름 레클리스.
6.25 전쟁 당시 미 해병대에서 뛰어난 전공을 세워 하사로 임관되었다가 상사로 진급한 한국 출신 병사가 있다. 생전에 그를 한 번도 보지 못한 미 해병대원들도 그를 영원한 전우라 부른다.
한국 이름 아침해, 미국 이름 레클리스.
1997년 라이프(LIFE)지는 미국의 영웅들을 선정하며 독립의 아버지 제퍼슨, 노예 해방의 링컨, 초대 대통령 워싱턴,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수녀 테레사와 함께 이 한국산 경주마를 미국의 영웅으로 꼽았다.
한국 이름 아침해, 미국 이름 레클리스.
1948년 신설동 경마장에서 태어났다. 데뷔 경주를 치르기 위해 훈련하던 중에 6.25 전쟁이 터졌고, 그를 원하는 미 해병대의 요청에 따라 입대한 경주마다. 아비마는 더러브렛, 어미마는 제주도 조랑말인 한라마다.
미 해병대에서 그가 맡은 임무는 포탄 보급이었다. 부상병 후송도 맡았다. 1분당 500발의 포탄이 쏟아지는 6.25 전쟁 최대 격전지 연천 고지전에서, 그는 혼자서 포탄을 날랐다. 사람 없이 레클리스 혼자였다. 탄약보급소에서 탄약을 받아서 논밭을 지나 가파른 산을 혼자 올랐다. 산꼭대기 최전선 포대에 포탄을 보급했다. 중공군이 포격하면 벙커로 피하고, 통신선이나 철조망이 있으면 옆으로 비켜 가며 혼자서 포탄과 탄약을 날랐다. 적의 포격으로 통신선이 끊긴 부대, 무선망이 파괴된 고지의 고립된 부대에, 홀로 포탄을 보급하고 부상병을 후방으로 실어나르는 레클리스는 생명줄이었다.
연천 베가스 전투에서 그는 가파른 산길을 하루에 51번 오갔다. 한 번에 88 킬로그램의 포탄을 날랐다. 잠시 눈 감고, 포탄이 날고 터지는 산비탈을 해병대원의 생명이 걸린 포탄을 메고 혼자서 힘겹게 올라오는 적갈색 말을 상상해보라.
83년 미 해병 역사에 동물을 하사관에 임명하고, 상사로 진급시킨 사례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다. 한국 이름 아침해, 미국 이름 레클리스다.
전쟁에서 이룬 전공만으로 미 해병대원이 그를 ‘영원한 전우’라고 부르는 건 아니다. 그는 활발하고 사교적인 성격에 유머 감각이 뛰어났다. 해병대원과 같은 텐트에서 자고 해병대원과 같이 콜라와 커피, 맥주와 초콜릿을 먹었다. 전쟁이 끝난 뒤, 미국에서는 레클리스 하사를 귀환하자는 요청이 쇄도했다. 그가 샌프란시스코항에 내렸을 때 리처드 닉슨의 순방 때보다 더 많은 언론과 카메라가 모였다.
아침해의 전기는 해병대 중령 앤드루 기어가 세터데이 이브닝 포스트(Saturday Evening Post)에 소개하며 처음 세계에 알렸고, 이후 ‘레클리스: 해병대의 자부심’이란 제목으로 책이 발간되면서 유명해졌다.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 ‘레클리스: 한국전쟁 감동실화’는 미국 영화 작가 로빙 허턴이 8년간 아침해, 레클리스의 공훈과 행적을 추적해서 저술한 전기다. 영화감독 황하민이 번역했다. 번역자는 문세영 기수, 문병기 조교사, 마사회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며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려 애썼다.
좋은 책이지만 몇 가지 흠도 있다. 책을 읽다 잠시 던져두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쉽고 재미있게 쓴 까닭이다. 생생한 사진을 풍부하게 제공해서 읽고 있던 문장을 놓칠 수도 있다. 감동적인 장면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어려움도 있다.
경마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야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