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금 소리
하재일
내가 아미산 건너 용수리 금강암에서 평사리 미산초등학교까지 십리 길을 걸어서 학교 다닐 때 우리 담임 백동호 선생님께서 학교 급식을 주실 때 아, 그 마르고 딱딱한 강냉이빵을 주실 때 꼭 그러셨다. 너는 집이 제일 먼 곳에 있으니 또 비탈길을 한참 올라가야 허니, 하시면서 아이들한테 나눠 주고 남은 마지막 강냉이빵을 몽땅 남김없이 털어 주셨다.
개나리꽃이 듬성듬성 보이던 강냉이빵, 달맞이꽃처럼 함빡 웃던 강냉이빵. 그 질긴 무명 옷을 뜯어 먹어 가며 냇갈※을 따라 슬슬 깊은 금강 골짝을 들락거리던 나는 엄마도 아빠도 없었기에 실개천 가재와 놀고 햇볕 쬐러 나온 자라와 말하고 물수제비나 뜨다 어미 닭 잃은 병아리처럼 흰 구름 몇 번 올려다보곤 했는데.
세월이 아무리 가도 그놈의 백동호 선생님의 함자는 여직까지 지워지지 않았으니 징그럽다, 견딜 수 없이 배고팠던 추억이 정말 징그럽다. 선생님의 눈썹이며 콧날이며 눈매는 전혀 생각이 안 나고 다 지워져 백지처럼 어두운데, 그놈의 딱딱하고 질겼던 강냉이빵만이 기억에 남아 오월 느티나무에 피는 여린 잎으로 푸르게 돋아난다. 아무래도 보령 댐 물속에 잠겨 수몰된 백동호 선생님의 낡은 풍금 소리나 들으러 가야겠다. 미산초등학교 마당에 누치나 꺽지로 환생해 맘껏 가보고 싶은 밤이다.
아, 산그늘 아래 해마다 찔레꽃 덤불로 살아오는 풍금 소리. 눈이 부신 오월이면 쟁쟁하게 귀에 밟히는 소리, 하얀 달빛 입은 강물이다.
※‘내’의 사투리. 개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