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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거두는 아픔, 사랑

비정(非情)

과천강호 내보내. 더 볼 게 뭐 있어. 가지고 있어봐야 돈만 들지! ○○○조교사같은 사람은 마주가 말하기 전에 마주님 갖고 있어도 돈만 든다고 내보내자고 한다더만, 당신은 왜그래?

말이 뛸 때가 있다고? 늦되는 말도 있다고? 그렇게 돈만 잡아먹고 기다리다가 안 뛰면 당신이 책임 질거야? 내가 한두 해 마주하는 줄 알아? 툭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지, 보면 몰라?

주행심사 보고, 경주 두 번 뛴 거 보면 알잖아?

두 살 말은 갈 곳이 없다고? 아, 그건 조교사가 알아서 해야지.

어떤 마주는 다리 부러뜨려서 보험금 받게 해달라고 한다던데, 내가 그런 것까지 요구하는 거 아니잖아?

혈통 전문가가 좋다고 해서 샀는데, 생긴 건 멀쩡한 게 뛰는 꼴 하고는. 아이 씨.


아유, 10등했어. 10등.

불쌍해서 못 보겠어. 내보내야지. 응? 다섯 살.

잘 뛰었지. 작년까지만 해도 나가면 우승이었지. 그러더니 여기저기 아프다고, 쉬고 뛰고 하다가 올해 들어서는 맨 저렇게 꼴찌야 글쎄. 불쌍해서 못 보겠어.

내보내라고 전화해야겠어. 조교사가 알아서 하겠지.


무지(無知)

당대제일이라고, 오래 경마한 사람은 알거야. 새강자, 무비동자, 자당 나오기 전 국산마 중에는 제일 잘 뛰었지. 새강자하고 최고 국산마 다투던 말이었어. 옛날에는 대상경주가 별로 없었어. 대상경주에서만 네 번 우승했고, 7년간 25승, 2착 13번 했지.

그 말이 은퇴했으니 당연 씨암말로 갔지. 새끼도 잘 낳았어. 어미 말만큼 잘 뛰진 못했어. 그랬더니 어떻게 된 줄 알아? 어느날 말고기용으로 용도변경하더만. 다음날 도축해버렸어.

고양이 사료로 썼는지, 개사료로 썼는지, 아님 사람이 먹었는지는 몰라.

씨수말, 씨암말로 가면 좋은 건줄 알아. 사람들이. 나도 씨수말로 부탁부탁해서 보냈어. 잊고 있었지. 어느날 자료 찾아보니 육용 도축이라고 표시되어 있어. 전화로 물어보고 따지니까, 도축했대.

씨수말로 적합하지 않더래.

소유권 넘어갔고, 내 말도 아니니 할 말이 없지. 많이 울었어.

한국에 들어오는 말, 국산마 모두 혈통 좋은 말 아니야. 검증된 말도 아니야. 몇번 교미해서 생산해보고 성적 안 나면, 생산자들이 그 말 어떻게 하겠어? 이해는 해.


자마 가진 분들 중에 사정상 말 못 타거나, 상태 좋지 않은 말 공짜로 줄테니 승마장에서 맡아달라고 하는 사람 있어요. 당장 처리하긴 편하죠.

승마장 주인은 자기가 사온 말도 아니고, 공짜로 떠안은 말인데 제대로 관리하겠어요?

아무데나 막 굴리다가 다치면 그냥 버리는 거에요. 사실 말을 학대하는 겁니다.

말을 샀으면 그 말 끝까지 책임져야죠.


후회(後悔)

지금도 후회해요. 앤디, 그렇게 보내면 안 되는 거였어요. 스무살도 넘은 말이었죠.

말을 탈 수 없어도 좋으니까 살려만 달라고 했죠. 천만 원이 들어도 상관없다고 했죠.

수의사는 어렵다고 진심으로 안락사를 권했어요.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요.

앤디를 데리고 이틀 동안 밤잠 안자고 걸어다녔어요.

새벽 네시에도 수의사 전화가 왔어요. 지금이라도 안락사 하겠다면 내가 가겠다.

이틀 동안 데리고 걷게 했는데도, 결국 배가 터져서 죽었어요.

정말 후회돼요.

수의사 말을 들었어야 했어요. 말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

많이 울었죠. 지금도 후회되요.

수의사 말대로 안 한게 지금도 후회되요.

옛날에는 말 아프면 바로 처리해 버리는 승마장 주인들 나쁜 놈이라 욕했어요. 그 사람들을 지금은 이해해요. 그 사람들도 내가 겪은 일 경험했겠죠.

술자리에서 떠나보낸 말 이야기 나올 때 승마장 사장들 모두 우울해져요.



사랑

이제 할아버지에요. 내가 부르면 멀리서도 뛰어와요. 내 말은 거의 알아들어요.

실바노요? 데리고 있었던게 12년? 13년? 이제 죽을 때까지 내가 책임 져야죠.

내가 거둬야죠.


아냐. 우리 집사람 타던 백합 있잖아? 더는 안될 것 같애. 사람이 위험해. 나이? 우리가 데려온게 10년 넘었고 당시에 열 서너살이었으니까 스물 네살, 다섯살쯤 됐겠네?

그동안 꾸준히 치료했지만, 뒷다리에 힘이 없어서 자꾸 무너져.

저 상태로 타다가 갑자기 쓰러지면 사람 다치고, 마방에서도 갑자기 주저앉으면 일하는 사람 다치겠다 싶어.

어디 보낼 수도 없고, 안락사 했으면 싶어. 아내는 펄쩍 뛰지만, 말한테 못할 짓이야.

마사회에서 경기도에서는 안락사와 렌더링을 지원한다고? 

정말 고마운 일이네. 야! 마사회가 그건 참 잘하는 일이다.

고마워.

아내 잘 설득했어. 말을 사면 끝까지 책임져야 된다고, 또 백합을 누구에게 보내려면 말이 좋은 상태에서 보내야 된다고. 아니면 천덕꾸러기 되고 말이 고통만 받다가 죽는다고. 안락사가 백합에게는 최선이라고.

알려준대로 말 차 준비했고 내일 내가 가서 마지막 가는 모습 지켜보려고 해.

고마워!


돌콩 참 의연하게 갔어요.

부산에서 올라오는 차에서 시술하자고 했지만, 난 반대했어요. 자신이 있던 마방에서 가게 하자고.

편안하고, 의연한 표정으로 갔어요.

고향 함양에 선산이 있어요. 520평 묘지 마련했는데, 그곳에 돌콩 무덤을 만들었어요.

비석도 세우려고 해요.

마음이 편안해요. 가끔 찾아가면 햇살이 참 좋아요


독백(獨白)

부부애가 남다른 노부부의 독백(獨白)

저 사람 먼저 보내고 다음에 내가 죽을 거야.


장애인 부모의 독백(獨白)

저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죽는게 소원입니다.


말의 독백(獨白)

정말 부탁이에요. 주인님, 내가 더 이상 쓸모가 없어졌을 때

굶기거나 추위에 떨게 하거나 팔아버리지 마세요.

나를 죽도록 고문하고 굶주리게 할

사람에게 나를 주지 마세요.

​제발요, 주인님, 내게 빠르고 편안한 죽음을 주세요.

그러면 하늘이 당신을 이생과 다음 생까지 축복할 겁니다.


2023.06.19 19048:5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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