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답답하면 니들이 뛰든가'
2007년 우즈벡과 축구에서 0-0으로 비기고 팬들이 비난하자 기성용이 한 말입니다.
저걸 못 넣나? 거기서 태클을 하면 어떡해?
축구 한번 안 해본 친구들이 국가대표 축구만 하면 침을 튀깁니다. 선수 생활 중학교까지만 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포함된 축구팀과 경기 해보면 압니다. 축구 선수들이 얼마나 축구를 잘하는지, 우리는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하물며 한국에서 제일 축구 잘하는 국가대표입니다. 내 자리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경기를 어떻게 하던 그냥 감탄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늘 자기 자리가 어딘지 잊고 삽니다. 잊고 엉뚱한 소리, 엉뚱한 생각, 엉뚱한 짓 합니다. 바닥이었던 자기의 성적은 잊고, 공부 잘하는 자식이 1등 못했다고 아쉬워합니다.
뒤늦게 철들어 평생 않던 청소했습니다. 걸레로 바닥 빡빡 밀었습니다.
다음날 오른쪽 어깨에 통증이 왔습니다. 견디기 힘든 아픔이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왼손으로 걸레질했습니다. 왼쪽 어깨에 더 심한 통증 생겼습니다. 사흘 견디다 한의원 갔습니다.
침 맞고, 물리치료하는데 30대 의사가 말합니다.
나이 들면 몸을 무리하게 쓰면 안되구요. 이제 하루하루 몸이 나빠지니까 늘 조심해야 하구요. 불라불라.....
내일 죽을 중환자 대하듯 합니다. 평생 건강에 무관심했던 사람일거라 단정하고 20여 분간 잔소리합니다.
보아하니 이 친구, 30대의 나보다 비실비실합니다. 장담하건대, 60대 되면 절대 나보다 건강한 몸 가지지 못합니다. 지난 건강 검진에서 나는 나이보다 8살 어린 몸이라 판정 받았으니까요. 신장대비체중지수 BMI 100, 근육 비율 120, 혈압 80-120, 주요 검진 항목 모두 정상입니다. 젊어서부터 승마에 등산에 운동 열심히 했고, 체중과 영양관리했으니까요.
의사들 대부분 자기 자리가 어디쯤인지 가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열등생이 우등생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타이릅니다.
경마일 일찍 갈수록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찻길 막히고 정문에 긴 줄 섭니다. 쉬는 날 대단한 정성입니다.
경주거리 1200미터, 6등급 부진마들의 경주입니다.
경주거리 1400미터, 6등급 기복이 있는 경주마의 경주입니다.
경주 아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경주를 시작합니다. 예시장에서도 듣습니다.
부진마 경주야, 부진마! 아무나 들어와도 돼!
그 부진마의 마주가 접니다.
나는 부진마 마주입니다.
저 말 안돼요! 데리고 있어봐야 돈만 들지.....
2021년 3월에 사서 2년 지난 23년 1월 서울경마장 능력있는 조교사에게 들은 말입니다.
이제 ○○은 내보낼 건가요?
여러 사람이 묻습니다.
잘 뛸 말이라 생각해서 고르고 골라 사서 육성훈련 넉 달, 주행심사까지 3개월 기다렸습니다. 가족과 주변에서 기대했고, 숨 죽이며 주행심사 지켜봤습니다. 혹시 실제 경주는 다를 수도 있기에 실낱 희망 가지고 관전했습니다. 바닥에서 들어오는 경주 세 번 하고는 병이 났습니다.
모두들 늦되는 말이라, 또는 말은 뛸 때가 있다는 조언에, 뒤늦게 걸음 터지는 말도 있다기에 휴양 보냈습니다. 이 말 이전에 산 말도 같은 과정으로 네 살까지 치료받고 휴양하다 주행심사도 못하고 보냈습니다. 경험은 기대를 이기지 못합니다.
주변 마주들이 말 소식 물으며 안됐다는 표정입니다. 마방 바꾸었고, 저는 조교사에게 미안해 합니다. 관리사 볼 때도 소심해집니다.
마주생활 초기에는 이러지 않았습니다. 처음 산 말이 잘 뛰었고 특별경주까지 나갔습니다. 입상권에 들었습니다. 그 다음 산 말은 데뷔전을 59초대로 들어왔습니다. 당시에는 드문 기록이었습니다. 특별경주 우승도 했고, 1군까지 갔습니다. 그 다음 산 말도 명마라 했습니다.
주변 마주들이 부러운 눈으로 대했고, 조교사 관리사에게 당당했습니다. 나는 말 복이 있는 사람, 마주에 소질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부진마와 부진마 마주. 무엇이 잘못됐고, 누구 잘못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내 잘못 아닙니다. 두 살짜리 미경주마가 잘 뛸지 못 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200년 경마 역사에서 확인한 사실입니다. 누구나 동의합니다. 부진마 경주에서 8천만원, 1억 짜리 말 찾기 어렵지 않습니다. 가장 대표적 사례는 2017년 160억 최고가 기록한 더그린몽키지요. 수백 명 전문가가 조사해서 최고의 말이라 결정해서 산 말입니다. 우승 한번 못하고 세번 뛰고 은퇴했습니다. 조사나 노력 않고 산 말이 아닙니다.
조교사 잘못 일까요? 기수 생활도 하고, 좋은 성적낸 조교사입니다. 당시 경마장에서 승률이 가장 높은 조교사가 훈련하고 관리했습니다.
말이 잘못했나요? 그럴리가요? 운동능력은 선천적인 건데, 태어나길 운동능력 없는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말은 생긴대로, 기질대로, 사람 시키는대로 했을 뿐입니다.
아무도 잘못한 사람 없습니다.
대상 경주 우승한 마주, 조교사, 말은 자신들이 잘해서 만든 결과일까요? 그들도 잘 한 거 없습니다. 우연히 축복받은 유전자 조합 가진 말을 골랐을 뿐입니다.
부진마를 쳐다보는 경마팬과 예상가는 다를까요?
서울 경마장에는 1650마리의 말이 있습니다. 아직 주행검사 받지 않은 250마리를 뺴면 경주마는 1400마리입니다. 이 가운데 5군과 6군 말이 700마리입니다. 절반의 말이 부진마 소리 듣고 은퇴한다는 말입니다.
경마팬, 예상가 여러분은 우리 사회에서 소득, 학력, 지위 측면에서 어디쯤 있을까요? 여러분이 열광하는 1군마, 상위 5 퍼센트에 해당하나요?
인정하기 어렵지만, 어찌 보면 부진마의 모습은 예상가, 경마팬 여러분의 모습입니다. 그 모습이 보기 싫을 겁니다. 그 현실을 인정하기 싫을 겁니다.
그럼 여러분의 자녀는 어떻습니까? 자녀분은 우리 사회 5 퍼센트에 해당하나요? 공부 잘하는 옆집 서울대생에게 환호하고 웬만한 대학 다니는 내 자식 외면하나요?
부진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말은 재빨리 내다 버려야 할까요?
그런 마주도 있습니다. 능력 확인 되자마자 내보냅니다. 저는 그런 사람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말을 대하는 모습은 사람을 대하는 모습이기 때문에 저는 그들에게 곁을 주지 않습니다.
자식 여럿 두고, 싹수 있는 놈만 거두고 없는 놈은 갖다 버리는 사람, 서울대 다니는 옆집 아들만 쳐다보고 공부 못하는 내 자식 구박하는 부모는 없을 겁니다.
서울대 다니는 자식보다 부진한 아들 둔 집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 아들 어떻게든 사람 구실하고, 남들처럼 잘 살게 키우려고 애쓸겁니다.
부진마 마주인 저도 그렇습니다.
부진마 마주인 내 처지가 경마팬, 예상가분의 처지와 다르지 않습니다.